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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01. 나와 동행하는 이들

12 Ma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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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방을 좋아한다.

중학생 때는 검은색 큰 가방을 메고 다녔는데 작은 몸집에 산만 한 가방은 마치 거북이 등딱지 같았다. 굳이 무거운 교과서를 들고 다녔고 덕분에 등교 시간은 짐을 나르는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가방에 대한 에피소드도 많다. 한쪽 끈이 뜯어져 웃긴 꼴이 되기도, 가방 사이로 터진 우유를 줄줄 흘리며 걷기도 했다. 무거운 가방에는 필요한 것이 계속 나오는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먹다 남은 빵, 종류별로 있는 머리끈과 편지지, 푸는 것을 포기한 엉켜버린 이어폰, 배가 아플 때 먹던 매실 주스, 아껴서 쓸 수 없는 마스킹 테이프 등.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물건들이었지만 인생의 무게라는 가방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아마도 허리가 굽은 탓이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늘 생각한다. 등딱지 같던 가방은 10년을 넘게 메고 다니며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꼭 메고 다녔다. 그러다 몇 달 전, 집을 나서는 길에 메고 있던 가방이 툭 하고 떨어졌다. 오랫동안 늘어진 실이 결국은 무게를 견뎌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가방은 임무를 다한 사람처럼 지치고 힘이 없어 보였다.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단짝 친구를 보낸 것처럼 한동안 등이 허전해 괜히 옷만 두껍게 입고 다녔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 변하지 않았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가방 없이 집을 나선 날을 꼽기 어렵고 이제는 종류까지 다양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갈 때는 팥죽색 뜨개질 가방, 마트에 갈 때는 남색 장바구니 캐리어, 여름이면 꼭 들고 다니는 청량한 하늘색 가방, 뭘 들고 가야 할지 모를 때는 나뭇잎 드로잉이 그려진 회색 천 가방, 그리고 옷장 어딘가 묻혀 있을 쪼그라든 가방들까지. 요즘은 엄마가 나를 키울 때 샀던 가방을 메고 다닌다. 옛날 디자인에 미색 사이로 얼룩덜룩 때가 탔지만 꼭 엄마와 함께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엄마는 가방에 여벌 옷부터 물, 간식, 손수건, 사진기, 화장품을 챙겨 다녔는데 매일이 소풍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모든 시간은 작은 가방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단순히 짐을 넣는 용도보다는 나를 고스란히 담아 내는 것이 되었고, 누군가와 동행하는 마음이 되었다. 어제 샀던 가방은 또 한 아름 무엇을 들고 올지 모른다. 오래될 추억일 수도 있고 녹아버린 초콜릿 덩어리일 수도!


Written  Kang Nayeong
Photo  Maison Blan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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