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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
    • EP03. 럭키 썸머 세일
    • EDIT BY 구달 | 2022. 8. 24| VIEW : 1287

    손님들이 미리 챙겨 온 장바구니를 꺼내 계산을 마친 양말을 쓸어 담아 간다. 일상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장면을 꽤나 자주 목격하는 요즘, 여름 세일 기간임을 실감한다.

    장바구니가 필수인 쇼핑 시즌인 만큼 양말 가게의 영업시간도 분주하게 흐른다. 매번 느끼지만 세일 기간에는 매출에 관계없이 업무 난이도가 미묘하게 상향 조정된다. 가령 바코드 찍기. 평소에는 그저 툭툭 찍는 단순 업무인데 세일 때는 브랜드별로 할인율을 일일이 변경해야 해서 은근 신경이 쓰인다. 전화 응대도 그렇다. 보통은 매장 운영 시간 등을 묻는 간단한 전화가 대부분이나 요즘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문의를 주로 받는다. 오늘만 해도 컬러 플레인 크루 삭스의 발목 길이를 아킬레스건 기준으로 재기로 협의한 후에 줄자로 재서 문자로 넣어드렸다.

    유독 길을 잃는 손님도 많다. 세일 소식을 접하고 매장에 가보기로 마음먹은 병아리(?) 손님들이 다 똑같이 생긴 빌라 골목 어딘가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만다. 손님들 못지않게 방위에 취약한 점원인지라 일단 무조건 럭키 슈퍼가 보이느냐고 묻는다. 슈퍼 앞으로 달려가서 손님을 무사히 모셔오는 것도 일이라면 일. 이렇듯 타코야키에 가다랑어포 얹듯 팔랑팔랑 쌓이는 작고 사소한 업무에 쉴 틈은 없지만 그렇다고 피곤에 허덕이지는 않는다는 게 세일 기간의 미스터리 포인트다. 아마 내가 여전히 손님 입장에 더 가까운 덕… 점원이라 그럴 게지. 두 켤레 살 가격에 세 켤레를 고를 수 있는 복된 날이니 능력 닿는 한 쇼핑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깎아주는 것도 아니면서 할인된 금액을 안내하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건 덤이다.

    늦은 오후, 손님 한 분이 신중히 고른 양말을 계산대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혹시 제가 놓친 게 있을까요?” 결제 단계에서 손님과 함께 쇼핑 최종 점검을 하는 일도 세일 기간에 특화된 업무 중 하나다. 먼저 할인 폭이 커서 이참에 경험해보면 좋은 브랜드를 알려드렸다. 다음으로는 인기가 많아 곧 품절이 예상되는 양말을 보여드렸다. 이어서 슬며시 운을 띄웠다. 또 제가 사심을 담아 보자면…. 이 말에 손님이 반짝 눈을 빛내면 덕후 아니 점원으로서 역량을 펼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신으면 참 좋은데 손님에게 선뜻 권하기 어려운 양말들이 있다. 가격이 비싼 경우가 그렇다. 우리 엄마의 입버릇인 ‘물건을 볼 줄 모르면 가격을 보라’는 말은 진실이고 분명 양말에도 해당되지만, 점원 입장에서는 아무리 착용감이 보드랍고 색감이 끝내줘도 3만 원대 양말을 추천하기란 쉽지 않다. 디자인이 독특한 경우도 비슷하다. 화려한 양말이 발목을 감싸는 짜릿한 기분을 나만 알자니 아쉬움에 사무쳐도 꾹 참아야 한다. 활용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지갑과 함께 마음을 여는 세일 기간이 되어야 나도 부담 없이 사심을 가득 담아 양말을 권할 수 있다.

    몇 켤레를 더 살펴본 손님은 키완다키완다(KIWANDA KIWANDA)의 나일론 니삭스를 추가로 구입했다. 박찬욱 영화 속 벽지를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무늬가 매력적인 제품으로, 딱 하나 남은 데다 30% 할인까지 들어가 ‘놓치면 아쉬운 양말’의 삼박자를 갖추었기에 자신 있게 권했다. 실제로 내가 세일할 때 쟁여서 요긴하게 신고 있는 양말이었다. 가을겨울에 스타킹 대신 신어도 좋지만 여름 장마철에 특히 유용하다. 반바지에 이 니삭스를 매치하면 바짓단이 젖을 염려 없이 갑자기 낮아진 기온에 대처할 수 있다. 퇴근하고 조물조물 빨아서 탁탁 털어 널어두면 다음 날이면 마른다. 장인의 손길이 닿은 건지 구멍도 잘 안 난다. 장마가 며칠을 이어지든 끄떡없다. 니삭스를 추가한 손님을 전송하고 보니 마감 시간이 코앞이었다. 서둘러 정리를 마치고 잽싸게 매장 문을 걸어 잠갔다. 역시 근무의 꽃은 퇴근이랄까. 오늘도 참 바쁜 하루였다. 럭키 슈퍼 앞에서 두리번거리던 손님이 나를 보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양말 발목 길이를 확인한 손님은 답장으로 빨간색 하트를 보내왔다. 쇼핑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손님들을 향해서는 손사래를 얼마나 쳤는지. 종일 종종거렸더니 허리가 아픈데 마음은 뿌듯하다. 럭키 세일 데이에는 바쁘면 바쁠수록 덕을 쌓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