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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
    • EP05. 줌 인 줌 아웃
    • EDIT BY 구달 | 2022. 9. 28| VIEW : 318

    올 봄에 발표된 제시의 노래 〈ZOOM〉에는 현대인의 본질을 한 줄로 꿰뚫은 가사가 있다. “우린 모두 사진 찍기 위해 살아.” 정말 그렇다.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어디서나 들리는 찰칵찰칵 소리가 그걸 증명한다.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이 강아지 모양처럼 보여서 찰칵, 방금 나온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아 입에 앙 넣기 전에 찰칵, 인왕산 정산에 올라선 기념으로 찰칵, 구청장을 뽑은 다음 투표소 앞에서 찰칵, 새로 산 볼캡의 로고가 잘 보이도록 셀카를 찰칵.

    내가 현대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폰 사진첩을 열어보았다. 사진 30,605장이 저장되어 있다. 용량으로 따지면 93.87GB, 빼도 박도 못할 확신의 현대인이다. 가장 최근 사진은 대략 한 시간 전에 강아지와 산책길에 찍었다. 쓰레기 투기 방지 목적으로 누군가 놓아둔 골목 안 거울 앞에서 잽싸게 셔터를 눌러 빌보와 내 하반신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얼핏 산책 인증 샷처럼 보이는 이건 사실 양말 자랑 샷이다. 흔들리는 꼬리 너머로 회색 양말 위의 갈색 다람쥐 무늬를 또렷이 포착해냈다. 양말 애호가로 살아온 지 어언 20년, 카메라 기능이 탑재된 휴대전화를 소유하게 된 2004년 이래로 나의 양말 뽐내기 스킬은 나날이 정교해졌다.

    하여 오늘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양말을 뽐내면서 덤으로 멋쟁이처럼 보이게끔 사진 찍는 공식을 공유하려 한다. 아주 간단하다. 무늬 양말에는 줌인, 컬러 양말에는 줌아웃. 가령 당근 꽃이 그려진 양말을 신었다고 치자. 발 가까이 렌즈를 당겨 흐드러진 작은 꽃잎에 포커스를 맞춘다. 내 양말에 수놓인 꽃이 이토록 섬세하다, 내가 이렇게 발목조차 소홀히 여기지 않는 꼼꼼한 멋쟁이다! 라는 맥락을 힘껏 실어서. 줌인을 하지 않으면 청바지의 스톤 워싱이며 ‘Love Yourself’ 같은 티셔츠 문구에 가려 당근 꽃은 존재감을 잃을 것이다.

    컬러 양말을 신은 날은 가능하면 멀리서 전신을 찍는 게 좋다. 가방, 셔츠, 마룻바닥, 뭐가 되었든 최소 3색 이상이 양말과 더불어 사진에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흰색은 검은색이 있기에 흰색으로써 존재한다. 어떤 색이 가지는 특유한 빛깔은 다른 색과 함께일 때 그 특유성이 드러난다는 의미다. 컬러 매치에 영 자신이 없어 고민이라면, 오히려 제비꽃이 가득 핀 화단 앞이나 알록달록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해보자. 나의 양말이 마치 잭슨 폴록 붓놀림의 일부인 듯 보일 것이다.

    혹시 15,500원 정도를 투자할 의향이 있다면(사기꾼 아닙니다) 애초에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예쁘게 찍힐 양말을 구입하는 것도 방법일 터, 세컨팔레트(2ND PALETTE)의 가을 신제품 가운데 사진발을 기가 막히게 잘 받는 양말이 매장에 입고되었다. eggplant dot, 가지색 점과 선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양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세컨팔레트는 항상 왼발과 오른발의 디자인이 다른 짝짝이 양말을 선보인다. 여기서 짝짝이라 함은 발목은 물론 발등, 발바닥, 아킬레스건에 이르기까지 양쪽에 찍힌 점과 그어진 선의 모양이 다 다르다는 말이다. 이러니 어느 각도에서 줌인을 해도 디테일이 살 수밖에. 게다가 바탕색은 진하게 내린 플랫 화이트 커피색이다. 보기만 해도 코끝에 고소함이 삭 스치면서 카페인이 당기는, 아니 눈에 쏙 담고 싶어지는 근사한 컬러여서 마치 천재 아이돌처럼 카메라가 뒤로 쑥 빠져 풀샷을 찍을 때조차 노련하게 시선을 본인 쪽으로 끌어당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양말이 실물파라는 사실이다. 비주얼 공격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매장에 입고된 날 진열을 마치자마자 홀린 듯 도로 집어 카드를 긁었다. 그리고는 카운터에 올려놓고 제품 컷을 찰칵, 바로 갈아 신은 다음에는 발목만 찰칵, 전신 거울 앞에 서서 풀샷을 찰칵, 앉은 채로 다리를 꼰 다음 발등이 잘 보이도록 찰칵, 허리를 뒤로 꺾어 뒤꿈치를 찰칵, 찰칵, 찰칵, 연신 셔터를 눌렀다. 제시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크게 땡겨 땡겨 좀 더 땡겨봐 봐 기똥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