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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
    • EP06. 본메종 월드컵
    • EDIT BY 구달 | 2022. 10. 8| VIEW : 958

    본메종에는 여러 모로 얽힌 추억이 많다. 우선 《아무튼, 양말》을 쓰고 〈경향신문〉과 했던 인터뷰 덕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본메종 양말을 양손에 하나씩 쥔 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박제되었다(기자님께서 기사 제목 첫머리를 꽤나 당돌하게 뽑아주셨다. “양말 150켤레가 어때서요?”). 삭스타즈에 취직하고 입사 선물로 마일리지를 받았는데, IT 기업으로 이직한 사람이 스톡옵션을 받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싶어 약간 들뜬 마음으로 본메종 신상을 대여섯 켤레 플랙스했던 기억도 난다. 청담 매장 오픈 멤버로서 첫 출근 날 매장 한가운데 놓인 2.6미터짜리 나무 테이블 전체가 본메종 2019 SS 시즌 양말로 채워져 있는 장면을 눈에 담았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1년에 두 번, 본메종에서 새로운 시즌을 선보이는 2월 중순과 8월 하순이면 나 혼자 개최하고 나 혼자 참가하는 작은 이벤트를 마련한다. 바로바로 본메종 이상형 월드컵이다. 진행 방식은 간단하다. 매장에 입고된 30여 종의 본메종 신상 가운데 최고 마음에 드는 양말 딱 두 켤레만 고르기. 지갑 사정 때문(만)은 아니고, 실은 우리 매장의 커플 손님에게서 영감을 얻어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본메종 입고 시즌이면 늘 매장에 들러 하나도 둘도 아니요 꼭 세 켤레씩 양말을 사 가곤 했는데, 머리를 맞대고 신중히 의견을 개진하는 뒷모습이 사랑스러워 기억에 남았다. 봄과 가을을 맞이하는 재미난 방법 같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애인이 없고, 그렇다고 친구에게 “너 혹시 81,000원 있니? 우리 27,000원짜리 양말 세 켤레씩 골라주기 할래?” 묻기도 뭐해서, 여차저차 혼자 즐기는 이벤트가 되어버렸지만.

    이번 시즌에 본메종 디자인 팀에서 칼을 간 모양이다. 사이트에 예약 구매 페이지가 열린 순간부터 머리를 쥐어뜯었다. 본메종은 매 시즌 주력 컬러가 바뀌는데, 이번에는 빈티지한 질감의 하늘색, 남색, 분홍색이 눈을 사로잡았다. 셋 다 내가 환장하는 색이다. 원래 붉은 것이 아니라 석양빛을 받아 불그스름해 보이는 갈색도 어찌나 예쁜지. 톨스토이 소설의 한 대목에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해질 무렵의 시골 하늘을 묘사한 문장을 뽑아 양말로 구현한 느낌이었다. 풀잎을 쪼는 새, 정원사와 그가 공들여 가꾼 멋진 꽃들, 잘 익은 과일, 궁정 악단까지, 양말마다 그려진 무늬 하나하나 다 스토리가 그려졌다. 한데 무슨 수로 두 켤레를 고른단 말인가. 양말들은 용호상박이요 나는 자승자박이었다. 참, 세 켤레가 아니라 두 켤레인 이유는 결승전을 삼파전으로 치러보니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져 진검승부 맞대결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1 대 1 토너먼트 형식으로 양말을 추려 나갔다. 노란색 앞치마를 두른 정원사는 몹시 귀여웠지만 달밤에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줄무늬고양이 가족에게 패했다. 고양이 가족은 다시 산책하는 누렁이에게 무릎을 꿇었고, 누렁이는 탐스러운 수국의 견제에 앞길이 막혔으며, 최종적으로 분홍색과 하늘색 꽃잎을 발목 전체에 화려하게 펼친 양말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치열한 토너먼트를 거쳐 가을겨울 시즌에만 선보이는 니삭스 가운데에서 한 켤레를 골랐다. 정원 박람회에 출품해도 손색없을, 이파리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다듬은 우아한 꽃이 꼿꼿하게 피어 있는 양말이다.

    이상형 월드컵을 마치고 보니 내가 고른 두 양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꽃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 발끝은 매혹적인 핫핑크색이라는 것. 혹시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지 궁금해져서 본메종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본메종은 매 시즌의 디자인을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전개하는데, 내가 고른 양말은 모두 Gros Calin, 번역하면 ‘열렬한 포옹’을 주제로 삼은 제품이었다. 올 가을에 특별히 끌린 양말이 하필 우연찮게 둘 다 열렬한 포옹이라니, 이 무슨 타로 카페에서 연애 운을 묻고서 신중히 뽑은 두 장의 카드 같은 결말인지 모르겠다. 무심코 진행했을 뿐인 양말 고르기로 내면의 무언가를 간파당한(?) 기분이다. 다음 시즌에는 대회 이름을 ‘본메종 타로 양말’로 바꾸어서 양말 두 켤레를 골라 운세를 점쳐 봐도 괜찮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