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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재니져의 출근일지
    • PAGE 01. 양말이라는 취미
    • EDIT BY 재인 | 2022. 11. 4| VIEW : 689

    양말이 뭐가 그렇게 좋아요? 양말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뒤로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도 양말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양말이 좋은 이유로 패션의 완성 같은 거창한 이유 대신 양말을 고르고 사서 신는 과정, 그 자체가 좋다고 답한다. 일상에 좋아하는 것을 하나 더 더하는 삶. 집을 나설 때 공들이는 부분이 하나 더 생기는 삶. 그것이 하루를 명랑하게 만든다는 걸 양말을 골라 신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20년 차 양말 애호가 구달 점장님 앞에서 나는 2년 차 꼬마 양말 전도사. 못해도 양말을 300켤레는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메리 디자이너님 앞에서 내 양말 장은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이렇게 양말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은 정말 양말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세상에 양말을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가? 싶은 마음. 막상 쇼룸에 있다 보면 양말만 모아 놓은 가게가 있다는 것에 놀라는 손님들을 마주하고는 하지만 말이다. 양말을 처음 좋아하게 된 때로 돌아가 보면 그 시작은 구달 점장님이 쓴 《아무튼 양말]을 읽고 나서였다. 아무튼 시리즈는 작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에피소드를 모아 묶은 에세이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녹색 배경에 귀여운 스트라이프 양말이 그려진 《아무튼 양말》의 표지였다. 양말로도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호기심이 솟구쳤다. 책을 다 읽은 주말에 바로 삭스타즈 청담 쇼룸으로 향했다. 미래에 내가 쇼룸의 매니저가 될 거란 건 꿈에도 모른 채 구달 작가님이 직접 포장해 주신 보라색 양말을 품에 안고 신이 나 집에 돌아왔던 날이 기억난다. 그날 집에 와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구달 작가님은 ‘호호 지네 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귀여운 댓글을 달아주셨다.

    그렇게 취미로 양말을 모으며 반 년쯤 흘렀을까? 친구였던 메리 언니가 삭스타즈에 디자이너로 입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는 며칠 후 삭스타즈에서 양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혹시 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왔다. 그럼요! 선뜻 받아 작성한 인터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무리 멋들어진 양말도 그 양말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빛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담동 골목길의 작은 양말 가게에서 맞은 첫 번째 여름은 설렘과 활기가 가득했다. 정오에 불이 켜지는 가게에는 일곱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들락날락한다. 직접 양말을 보고 고르기 위해 복잡한 골목길을 돌아온 손님,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러 왔다가 아기자기한 가게의 외관에 홀려 들어오는 손님, 매력적인 선물의 정답이 양말이라는 것을 깨달은 손님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던 설렘을 지나 두 번째 여름이 왔다. 이제는 익숙하게 가게의 불을 켜고 캘린더의 날짜를 바꾼다. 그날의 날씨와 어울리는 선곡을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리사르 직원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매일 동네를 산책하는 견공 친구들을 쓰다듬는다. 이곳에서 잊지 못할 사람들을 참 많이 사귀었다. 1년 사이에 뜻밖에도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서른여섯 번의 출근, 내일로 딱 12주가 흘렀다. 세 달 동안 내가 배운 건 스스로 팬이 되지 못하는 브랜드는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없다는 거. 나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팬이 되어본 적 없는 사람, 내가 만든 것을 좋아하면서도 늘 자신 없던 사람. 이곳에 있으면서 그런 태도부터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일기를 쓴 지 일 년하고도 한 달이 더 지났다. 양말에 대해 1년 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지만 어쩌면 지금은 초심을 다시 한번 찾아야 할 때, 조금 더 능숙한 프로 양말 러버가 되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