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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
    • EP08. 따뜻한 겨울
    • EDIT BY 구달 | 2023. 1. 5| VIEW : 389

    지난 토요일에 혜원 매니저와 함께 가게에서 키우는 구상나무에 꼬마전구를 둘둘 감았다. 양말 모양 오너먼트를 잔뜩 매단 트리에서 노란 불빛이 반짝거리자 매장이 한결 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 커다란 양말 주머니 세 개를 주렁주렁 걸어놓은 유리창에도 꼬마전구를 켰다. 앙증맞은 눈사람 인형과 새빨간 리스로 꾸민 쇼윈도에는 초록색 울 양말을 올려놓았다. 매장에는 캐럴이 흐른다. 바야흐로 연말이다.

    여느 날처럼 가게 문을 열고 여느 날처럼 손님을 맞이하지만 연말에는 확실히 연말 기분이 난다. 창문 밖으로 눈이 날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빨갛고 초록한 것들로 매장을 꾸며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양말을 사러 오는 손님들의 영향이 크다. 혹시 아는지? 아주 많은 어른들이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성탄절에 깜짝 선물을 주고받는 미풍양속을 잊지 않고 양말 가게를 찾는다. 그뿐 아니다. 연말이면 팀원들에게 양말 한 켤레씩을 돌린다는 회사원 팀장님, 모임 회비 잔액을 내년으로 이월시키는 대신 양말을 사서 회원들과 나눠 신으려 한다는 동호회 회장님, 마니또에게 줄 1만 원대 선물을 찾는 교회 자매님도 가게 문을 두드린다. 덕분에 양말 가게 점원의 열손가락은 12월 내내 양말을 포장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연말 선물로 양말을 고르는 마음에는 무언가 뭉클한 구석이 있다. 양말은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지만 생필품이기도 하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발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양말이 꼭 필요하다. 발이 시리면 몸에 한기가 들 뿐 아니라 괜스레 서러워지는 법이니까. 그러니 연말에 건네는 양말에는 상대방을 기쁘게 만든다는 선물 본연의 목적에 더해, 상대방이 온기를 머금은 채로 한 해를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바람이 자연스레 덧붙는다. ‘연말-추위-따뜻함-양말’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이 매년 12월이면 사람들을 이 작은 양말 가게로 이끈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 귀엽게 느껴진다. 양말 상자에 꾹꾹 눌러 담은 온기를 아끼는 이에게 주려는 마음이라니.



    한바탕 포장용 스티커와 사투를 벌이고 나니 어느 순간 매장이 고요해졌다.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흐트러진 양말만 남았다. 펼쳐진 양말을 다시 접고, 엉뚱한 데 놓인 양말은 제자리로 옮기면서 양말을 하나하나 만지다 생각했다. 나도 이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감촉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우리 가게에서 자루를 가득 채우고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떠난 양말 산타들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워 닮고 싶어졌다.

    오늘의 마지막 산타를 전송하고 영업을 마감했다. 손님들을 위해 틀어두었던 캐럴은 끄고(사실 나는 캐럴을 즐겨 듣지 않는다), 그 대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 노래를 틀었다. 이번 칼럼과 똑같은 제목을 가진 노래다.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조립해 손에 쥐자 금세 여러 얼굴이 떠올랐다. 우선은 당장 내일 만날 친구들. 독서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점잖은 세 친구를 위해 삭스타즈 컬러 립 크루 삭스를 모아둔 바구니에서 세상 쨍한 색깔로 여섯 켤레를 골랐다. 상자를 짜잔 열어 보인 다음 무조건 두 켤레씩 고르게 할 생각이다. 일명 아무 양말 챌린지. 춥고 깜깜한 겨울 퇴근길에 발목을 감싼 쨍한 양말을 내려다보며 잠시나마 웃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토끼가 그려진 양말을 쏙쏙 골랐다. 토끼의 해에 토끼 양말 신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쑥스러운 인사는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하겠지만.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 주리라 믿는다. 수족냉증이 심하다면서 꼭 새벽에 글을 쓰는 동료에게는 도톰한 테리 삭스를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 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카운터에 양말이 산처럼 쌓였다. 이번 칼럼의 원고료는 탈탈 털어 자루를 채우는 데 썼다. 여기 적은 1858자는 따뜻한 양말 16켤레로 변신해 점장 구달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