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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재니져의 출근일지
    • PAGE 03. 누구나 어울리는 양말 한 켤레는 있지
    • EDIT BY 재인 | 2023. 1. 23| VIEW : 173


    오늘은 양말 가게의 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처음으로 ‘솔로’ 근무를 하는 날. 3주 동안의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드디어 혼자 삭스타즈를 지키게 되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며 혹시 잊은 건 없는지 메모장에 적힌 매뉴얼을 살폈다. 이런 나의 긴장을 아는 듯 점장님은 초보 매니저를 향한 응원과 함께 돌발 상황에는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라는 다정한 인사를 남겨두셨다. 든든한 마음에 미소를 지으며 메모를 읽고 있는데 주차 실장님이 슥 들어온다. “오늘 혼자 근무하시죠? 파이팅!” 하며 포도 주스를 건네셨다. 아, 다정한 시작!


    오 월은 아무래도 좋은 계절이다.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공기가 따뜻하고 청량하다. 사 월과 다르게 문을 밀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옷차림도 가볍다. 양말 사기 좋은 계절이지요? 괜히 손님에게 한 마디 건네고 싶은 기분이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양말 가게 매니저는 어떻게 입냐고? 주로 종아리쯤 오는 치마에 낮은 단화를 신는다. 그 사이로 보이는 양말이 주인공이 되도록 입는다. 집을 나서기 전에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양말이 너무 요란하진 않은지, 그렇다고 또 너무 평범하진 않은지를 살핀다. 오늘도 ‘이렇게 신으면 예뻐요’하고 말을 붙일 수 있는 양말을 골랐다.


    한 달 정도 지켜본 결과,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은 일단 화려한 양말로 손을 뻗는다. 그림 속에 이야기가 느껴지는 본메종(Bonne Masion)이나 가끔 야하다는 평을 듣곤 하는 키완다키완다(Kiwanda Kiwanda), 여러 패턴이 섞여 있어 피에로의 옷처럼 보이기도 하는 씨오큐(COQ).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양말들이다.


    하루는 중년의 어머님 세 분이 가게에 들어오셨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방금 마시고 온 에스프레소 맛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걸 보니 우리 가게를 찾아온 손님은 아닌 것 같다. 양말에는 별 관심이 없는 건가? 생각할 때쯤 양말 가게인 걸 깨달은 그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그럼 그렇지!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면서 양말을 좋아하지 않을 리 없지! 이상한 논리로 뿌듯함을 느끼며 매장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어머님들을 지켜봤다. 어머머. 어머 어머. 어어머를 외치던 한 어머님이 니삭스가 걸려있는 테이블 앞에 섰다.


    “어머, 이것 좀 봐! 나는 딸 있으면 이런 거 신길 거야. 미친년처럼 화끈하게 입혀보는 게 소원이라니까?” 모른 채 하려고 했는데 그의 화끈한 말에 참지 못하고 웃음이 세어 나왔다. 어머님 손에 들린 양말은 키완다키완다의 씨스루 니삭스. 꽃 자수가 수놓아진 스타킹이다. 마침 내 치마 밑에 숨겨져 있는 니삭스기도 했다. 이럴 때는 또 나서서 보여드려야지. 저도 그게 너무 예뻐서 색별로 샀어요,하며 긴 치마를 살짝 들추고 발을 내밀자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미니스커트를 입어야죠! 장난기 섞인 말로 받아치며 계산대 위에 니삭스를 올려놓는다. 영업 성공인가?


    어머님은 끝내 그 스타킹 대신 같은 브랜드의 실크 양말을 구매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그의 옷차림에 더 잘 어울리는 양말이었다. 고급스러운 양말 한 켤레를 사고 나가는 뒷모습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아마 다음 가게에 가서는 방금 산 양말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을까? 일상 속 작은 행복의 조각이 되는 것. 양말의 역할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