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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
    • EP10.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 EDIT BY 구달 | 2023. 3. 27| VIEW : 1018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었음을 증명하듯이 토끼 양말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까만 토끼, 하얀 토끼, 당근 먹는 토끼, 풀꽃에 둘러싸인 토끼 등등이 골고루 손님 품에 안겨 떠난다. 토끼의 해가 왔다고 토끼가 그려진 양말을 집어드는 그 마음이 참 귀엽다. 양말 가게를 찾는 손님들 모두 토끼처럼 귀엽고 복슬복슬한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 토끼들도 올해는 인간이 가하는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이 짧은 문장 안에서도 이런저런 소망을 빌게 되는 걸 보면 역시 새해는 새해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양말 가게에서 네 번째로 맞이하는 새해다. 황금돼지의 해(2019년)에 취직해 쥐, 소, 호랑이, 토끼까지 그동안 띠가 네 번 바뀌었다. 십이지신이 주인공인 만화 〈꾸러기 수비대〉 주제곡을 따라 부르던 시절 이후로 까먹고 살았던 띠 순서를 연초에 양말을 팔면서 하나하나 외워가고 있다. 이러다 눈 깜빡할 사이에 다시 돼지띠가 돌아오는 게 아닐까? 양말 가게에서 토끼 양말, 원숭이 양말, 닭 양말을 팔면서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는 삶을 상상해 보았다. 아주 마음에 든다. 용 양말과 뱀 양말을 꼭 팔아보고 싶다.

    며칠 전에는 한 손님이 오랜만에 양말을 사러 왔다며 “그때 일하던 분 맞으시죠?” 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셨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대략 시기를 헤아려 보니 그분이 우리 가게를 찾은 건 쥐의 해였다. 그러니까 3년 전이다. 손님은 그때 내가 골라준 양말을 지금까지 잘 신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가슴에 뿌듯함이 차오르면서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에 쏙 드는 양말을 구입한 기억이 3년을 간다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양말을 등 떠밀려 사버린 기억의 유통기한도 그와 비슷하지 않겠는가. 사자 양말을 찾는 손님에게 같은 맹수 계열이라며 호랑이 양말을 권했던 기억과 무채색 옷을 주로 입는다는 손님에게 기분 전환이 될 거라며 핑크색 양말을 쥐어 주었던 기억 등등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하여 결심했다. 올해 목표는 양말 추천 능력 향상이다! 지금까지 나의 주관적 경험과 취향에 의존해 양말을 추천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손님들의 선호와 패션 동향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양말을 권할 줄 아는 프로 점원으로 거듭나리라. 그렇게 연초에(만) 발동하는 건설적인 투지를 불태우며 카운터에서 벌떡 일어섰는데...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바로 지금 우리 가게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양말, 토끼 양말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토끼를 약간 무서워한다. 고백하자면 연초에 손님들에게 열심히 토끼 양말을 권하면서도 내내 호랑이 양말만 신었다. 진정성이 부족했다.

    토끼의 해에 토끼 양말을 신으면 실제로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새해에 유행할 패션에 토끼 양말을 어떻게 접목시키면 예쁠지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까만 토끼, 하얀 토끼, 당근 먹는 토끼, 풀꽃에 둘러싸인 토끼 중에 어떤 토끼가 본인 발목에 어울릴지 잘 모르겠다면 아무쪼록 청담 매장을 찾아주시기를. 몇 년을 신어도 만족스러울 토끼로 성심을 다해 골라드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