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JOURNAL

  •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
    • EP11. 양말 가게 점원의 정신승리 5계명
    • EDIT BY 구달 | 2023. 4. 27| VIEW : 1077

    SNS를 훑다가 ‘직장인의 출근길 정신승리 8계명’이란 걸 보았다. 점심 먹으러 멀리 다녀온다 생각하기, 외로운데 사람 만나러 간다 생각하기 등등 뇌를 살짝 교란시켜 출근을 이겨내게 만드는 비책이 적혀 있다. 가슴에 사표를 품고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었던 이 대리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눈물이) 났다.

    양말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지금은 예전만큼 출근이 괴롭지 않다. 돌이켜보면 업무보다는 대인관계를 힘들어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출근한 나를 반기는 게 양말뿐이어서 그런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주로 필담으로 소통하는 동료들은 다들 귀엽고 좋은 사람들이라 가끔 함께 근무할 기회가 생기면 약간 설레기까지 한다. 업무는 손에 익었고, 일주일에 사흘만 일하니 피로가 쌓일 틈도 없다. 그렇지만 폭우가 쏟아진다면? 황사 경보가 발령된다면? 넷플릭스를 달리느라 밤을 샜다면? 어우, 벌써 출근하기 싫다. 그런 날들을 대비하여 양말 가게 점원의 정신승리 5계명을 생각해 보았다.


    1. 맛있는 에스프레소 마시러 간다고 생각하기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빈 잔 쌓아 올리기 열풍을 일으킨 그 유명한 에스프레소 바 ‘리사르 커피’가 양말 가게 위층 집이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먹는 카페 에스프레소는 지금까지 얼추 백 잔은 마셨을 텐데도 매번 눈이 번쩍 뜨인다. 남들은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와 맛보는 이 맛있는 커피를 나는 일하다가 카페인이 떨어졌을 때 계단 12개만 총총 오르면 마실 수 있다. 게다가 법카로! 카페인 충전을 위해서라도 출근을 아니 할 수 없다.


    2. 귀여운 네발친구들 보러 간다고 생각하기
    우리 양말 가게는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스레 동네 견공 친구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통성명한 친구도 제법 많은데, 또또는 내가 인사를 건네면 살랑살랑 걸어와서 몸통 박치기를 한다. 강아지뿐이랴. 나를 보면 아주 뻔뻔하게 다가와서 먹을 걸 내놓으라고 냐옹거리는 고양이 친구 까미도 있다. 이 세계에서는 사교성 빵점인 내가 출근만 하면 친구 부자라니! 어서 출근해야겠다.

    3. 최신 패션 동향 체크한다고 생각하기
    출근길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거리에 붙은 별명이 일명 ‘명품 거리’다. 거리 양편으로 명품 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늘어서 있기 때문인데, 덕분에 출근하면서 요리조리 두리번거리기만 해도 패션 공부가 절로 된다. 오늘 출근길에는 샤넬 마네킹이 입은 착장에 눈길이 갔다. 고급스러운 분홍색 트위드 재킷에 레이스로 얼기설기 짠 고쟁이 같은 걸 받쳐 입었다. 내가 뭘 본 거지? 하이패션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다. 맞은편의 돌체 앤 가바나 매장 마네킹은 얼마나 심오한 옷을 입었을지 궁금하니까 내일 출근도 순조로울 예정이다.


    4. 걷기 운동 한다고 생각하기
    내가 사는 동네는 북악산 자락이고, 양말 가게는 영동대교 근처 한강변에 가깝다. 둘 다 지하철 뚫기 어려운 지형이라는 의미다. 그 탓에 출근길 동선이 상당히 복잡하다. 지하철은 16분을 타는데 환승과 도보 이동에 40분이 걸리는 매직! 걸음 수로 따지면 6,000보 정도다. 꾸준히 걸으면 심폐 기능 향상에 성인병 예방 효과까지 있다는데 출근을 안 할 이유가 없다.


    5. 양말 쇼핑하러 간다고 생각하기
    양말 가게 점원이라는 직업의 최고 장점은 양말로 밥벌이와 덕질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 요즘처럼 내 취향에 꼭 맞는 화사한 색감의 양말들이 매주 입고되는 계절에는 더더욱 그렇다. 따끈따끈한 신상 양말을 일등으로 구경하고 일등으로 사 신을 수 있다니, 직업 만족도 최상! 오늘은 히그의 노란색 실켓 양말을 품었다. 레몬 하트(lemon heart)라는 이름과 꼭 어울리는, 양쪽 발목에 자그마한 하트가 그려진 귀여운 양말이다. 실은 발등과 아킬레스건에 하트가 콕콕 박힌 아이보리 하트(Ivory heart)도 살까 말까 고민 중인데 일단은 다음 주 출근을 위한 정신승리 아이템으로 남겨두려 한다.

    *위에 나열한 5계명을 점원이 아닌 손님 입장에서 실행하면 아주 알찬 서울 나들이 코스가 완성된다. 어느 무료하고 심심한 주말에 한번 시도해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