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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재니져의 출근일지
    • DAY10. 재인 씨 언제 밥 한 번 먹어요
    • EDIT BY 재인 | 2024. 4. 26| VIEW : 386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었다. 타인과의 대화는 새로운 생각을 던져줬고 나를 더 넓은 곳으로, 결코 경험해 볼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다. 책이나 영화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나는 마주한 사람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좋다. 그 사람만이 가진 말씨, 비언어에서 느껴지는 이야기의 목적. 그것들을 추측해 보는 재미.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가늠해 본다. 이야기꾼들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을 재미있게 풀어내는데 온 힘을 쓴다. 그 모든 이야기에는 의도가 있다고 느껴진다. 자기에게 벌어진 일들이 웃기거나 신기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싶거나 자기가 느낀 어떤 황홀이나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문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쏠린다. 그 마음을 두드려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듣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당신이 가진 이야기 좀 풀어봐요.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런 내 눈동자를 읽은 걸까, 양말 가게에 온 손님들은 때때로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는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예전에 어떤 여행을 해봤고 지금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키우는 반려묘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이야기에 푹 빠져 듣다 보면 때론 그 대화가 아주 깊은 곳까지 가닿아 있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여러 몸으로 살아보지 못하는 한계를 느낀다.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자주 상상해 본다. 이것이 내가 느끼는 삶의 묘미이다.

    자주 오는 손님이 있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지만 또 엇비슷한 면이 많은 손님은 올 때마다 간식을 챙겨 주시고 나를 꼭 이름으로 불렀다. 양말 추천으로 시작하는 대화는 늘 일상의 이야기로 이어져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시곤 했다. 어느 날 친구와 손님이 추천해 준 서촌 골목에 있는 와인바에 갔다. 마당 가운데 화로가 틀어져 있고 마당을 네모나게 둘러싼 한옥은 들어가면서부터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었다. 꽤 추운 날이라 우리는 따뜻한 나베와 탄산이 들어간 막걸리를 시켰다. 여기 손님이 추천해 주신 곳이에요. 같이 간 친구에게 말하고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옆 테이블에 누군가 앉으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곳을 추천해 준 손님이 의자 위에 가방을 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오늘, 이 시간에, 자리가 나뉘어 있는 한옥에서 어떻게 또 내 옆자리에!

    그날 우리는 손님이 시킨 비싼 와인을 몇 잔 건네받으며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었다. 다음 날 메시지가 왔다. 재인 씨,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어요. 그렇게 또 다른 공간에서, 또 한 끼의 식사를 나눴다. 에스프레소와 나폴리탄과 하이볼을 함께 파는 곳이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손님이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메시지가 왔다. 이런 순간 나는 삶이 시적이라고, 영화적이라고, 소설적이라고 느꼈다. 주고받는 마음 없이는 하나도 재미없었을, 그런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