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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재니져의 출근일지
    • DAY05. 양말가게의 플레이리스트: KIRINJI
    • EDIT BY 재인 | 2023. 6. 2| VIEW : 2371

    양말 가게에서 일을 하며 즐거운 일 중 하나는 좋은 음악을 마음껏 듣고 또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말 가게 사심 플레이리스트는 듣고 또 듣고, 또 들었던 곡들을 소개하는 코너. 적어도 이 가게에서 100번 이상 흘러나왔을 노래다.

    삭스타즈에 있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일본에 놀러 온 것 같다는 말이다. 한적한 동네의 분위기와 낮은 가게의 입구, 통유리 앞에 놓인 철제 의자 두 개. 작고 오밀조밀 꾸며진 내부가 그런 인상을 주는 듯하다. 맞아, 나도 외관에 끌려 이 양말 가게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곳은 왠지 낭만이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은 퇴사 선물을 사러 왔다는 손님이 말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사무실은 너무 갑갑한데..] 그 말을 듣고 알았다. 이 공간은 내게 익숙한 일터이기도 하지만 쉼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양말 가게에 출근하는 길이 괴로웠던 날은 없던 것 같다.

    키린지의 음악을 틀면 나도 잠시 푸르스름하고 어둑한 저녁, 선술집이 모여 있는 일본 골목길 어귀에 머물 수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노래 한 곡으로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성비 좋은 여행인가. 낯선 곳으로, 내가 상상한 곳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다면 노래는 노래 이상의 무언가가 된다.

    오늘도 창밖으로 강아지를 산책 시키는 주민들이 오간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 키린지의 Aliens를 크게 틀고 문을 열어 둔 채 바깥 의자에 앉았다. 1996년 일본, 호리고메 타카키와 호리고메 야스유키 형제가 결성한 키린지는 기린아(麒麟兒)에 가타카나 발음을 붙여 지은 이름이다. 의미도 모른 채 도입부 멜로디에 이끌려 들었던 Aliens. 어느 날 찾아본 가사의 해석은 나를 한 번 더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무더운 여름에도, 발이 시린 겨울에도, 불어오는 바람에 코를 벌렁이게 되는 봄, 가을에도 잘 어울리는 곡이다. 그래도 왠지 처음 들었던 계절이 여름이라 내게는 여름의 인상을 일으킨다. 이 곡을 알려준 언니는 내게 말했다. 재인아, 세상에는 이런 것도 있어요. 언니의 넓고 깊은 취향.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곁에서 조금씩 테두리를 넓혀간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양말을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고 기꺼워하는 사람들이다. 나를 따라 양말 한 켤레를 사보는 사람.

    몇 년 전 겨울, 언니에게 소포가 왔다. 예고도 없이 도착한 택배 속에는 언니가 직접 디자인한 포스트잇과 여행에서 사 왔다는 모네의 수련 노트, 백은선 시인의 시집 [가능세계] 그리고 양말 한 켤레가 들어있었다. 모든 선물에는 어떤 마음으로 골랐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메모가 붙어있었다. 분홍과 노랑, 초록이 블록처럼 나뉘어 있는 니트 양말. 타인의 눈에 나는 이런 양말이 어울리는 사람이구나. 뜻도 모른 채 발음 먼저 익혀버린 Aliens를 따라 부르며 생각했다.



    まるで僕らはエイリアンズ
    (마루데 보쿠라와 에일리안즈)
    마치 우리들은 에일리언 같아


    禁斷の実 ほおばっては
    (킨단노 미 호오밧테와)
    금단의 열매를 가득 머금고선


    月の裡を 夢みて
    (츠키노 우라오 유메미테)
    달의 이면을 꿈꿔


    キミが好きだよ エイリアン
    (키미가 스키다요 에일리안즈)
    네가 좋아 에일리언


    この星のこの僻地で
    (코노 호시노 코노 헤키치데)
    이 별의, 이 외딴 곳에서


    魔法をかけてみせるさ
    (마호오오 카케테미세루사)
    마법을 걸어 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