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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
    • EP12. 양말을 올려 신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 EDIT BY 구달 | 2023. 7. 6| VIEW : 469

    맵시 한번 부려보려다 망신살이 뻗친 까마귀의 슬픈 사연을 아는지? 이솝 우화에 실린 유명한 이야기로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어느 날 신이 생각한다. ‘새들의 왕을 뽑아야겠군!’ 신은 새들을 불러 모아 가장 아름다운 새를 왕으로 뽑겠다고 통보한다. 이에 새들이 부리나케 강가로 몰려 가 몸단장을 하느라 정신없는 틈에 못난이 까마귀 한 마리가 꾀를 짜낸다. 땅에 떨어진 멋진 깃털을 잔뜩 주워 제 몸을 치장한 것이다. 깜박 속은 신이 까마귀를 왕으로 삼으려 하자 새들이 달려들어 자기 깃털을 찾아내 뽑아버리고, 초라한 본체만 남은 까마귀는 비웃음을 사고 쫓겨난다.

    가끔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이솝 우화 속 까마귀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체형, 퍼스널컬러, 연령(!)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그저 내 눈에 예뻐 보이는 패션 아이템을 근본 없이 조합해 꾸민 외형이 총천연색 깃털을 되는 대로 꽂고 우쭐거리는 까마귀를 연상케 한달까. 그래도 이런 모습을 깔깔 비웃으며 표독스럽게 깃털을 낚아채는 잘나신 새들이 주변에 없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는 한마디로 그 어떤 난해한 패션도 납득시킬 수 있는, 필이 가는 대로 마음껏 개성을 뽐내도 괜찮은 호시절이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것들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은 미드카프 길이의 양말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신는 크루 삭스보다 목이 한 뼘 정도 더 길어서 신으면 정강이 중간쯤 온다. 다리를 길고 얇아 보이게 연출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애매한 길이감이 매력 포인트다. Fun하고 Cool하고 Chic하다. 의외로 실용적이어서 주름을 잡아 짧게 신거나 쌀쌀한 날씨에 내복 대용으로 바지 안에 신기도 좋은데, 사실 미드카프 삭스의 진짜 매력은 뜨거운 여름에 빛을 발한다. 짧은 양말 아니면 그냥 맨발로 다니는 99%의 행인들과 완전히 결이 다른 멋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계절에 목이 긴 양말이 웬 말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요즘 친구들이 더위를 안 타서 올 여름 카고팬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건 아닐 터이다.

    흔치 않아 더 매력적인 미드커프 삭스의 유일한 단점은 흔치 않기에 마음에 드는 제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봄가을 시즌에 미리 쟁여두거나 남성용 양말을 사 신곤 했는데, 이번 여름은 종진 매니저와 삭스타즈가 함께 만든 JJ에디션 양말이 있어 든든하다. 넉넉한 길이, 쾌적한 착용감과 더불어 재치 있는 디자인을 클래식한 컬러로 잡아준 센스가 마음에 든다. 오늘은 아라비아 숫자를 한쪽은 종아리에, 다른 쪽은 발바닥에 그려 넣은 양말을 신었다. 손님들이 “숫자가 왜 한쪽에만 있어요?” 하고 물을 때마다 우쭐거리면서 발바닥에 감춰진 비밀을 밝히는 나 자신이 웃기고 귀엽다. 나의 우쭐거림에 혹해 양말을 사 가신 손님들도 웃기고 귀여운 마음으로 미드카프 삭스를 즐겼으면 좋겠다. 잘나신 누군가가 날도 더운데 어쩌고, 다리가 길어 보이려면 어쩌고 훈수를 둔다 해도 신경 쓰지 말자. 우리에게는 그들을 납득시킬 마법의 멘트가 있다. 양말을 정강이까지 올려 신으면 기분이 좋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