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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룬아의 인터뷰
    • 천천히 진심으로 엮어가는 박종진의 유니버스
    • EDIT BY 룬아 | 2023. 7. 20| VIEW : 1163

    천천히 진심으로 엮어가는 박종진의 유니버스 발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이 있다. 발뿐 아니라 ootd도, 여자친구와의 근황도 자주 올린다. 짧은 수염으로 둘러싼 애띈 얼굴과 남다른 기럭지가 눈에 띄는 사람, 박종진. 인플루언서인가 싶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뭔가 다른다는 걸 알 수 있다. ‘협찬'이나 ‘광고' 같은 해시태그가 없고, 포스팅이 잦지 않고, 같은 브랜드의 반복이다. 아티지, 블링크, 삭스타즈, 삭스타즈, 삭스타즈.

    브랜드 매니저라는 타이틀로 세 브랜드와 일하는 박종진은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쉬이 상상되지 않는 범위의 브랜딩 업무를 하고 있었다. 쇼룸 인테리어를 디렉팅하기도 하고, 제품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헤진 본메종(Bonne Maison) 양말을 기워 셀프 룩북을 찍기도 하고. 신중하면서도 한계를 두지 않는 그가 삭스타즈와 협업한 JJ(종진) 에디션 양말을 신고 청담 쇼룸 앞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종진님, 삭스타즈(양말)와 아티지(남성복), 블링크(안경)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고 계신데 어떤 직업인지 궁금합니다.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인플루언서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브랜드 매니저라는 직함은 자체적으로 지었어요. 일반적인 브랜드 매니저와 하는 일이 다소 상이하지만, 브랜딩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반면 스스로 인플루언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인플루언서의 역할과 저의 업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에요. 광고성 활동은 거의 없어요. 대신 삭스타즈, 아티지, 블링크라는 브랜드와 장기적이고 깊은 파트너십으로 협업하고 있습니다.

    세 브랜드 모두 패션 영역에 속해 있어요. 인스타그램 피드만 봐도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원래부터 패션업에 종사하고 싶었나요?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했어요. 다만 그게 특별한 관심사라고는 여기지 않았어요. 누구나 옷에 그 정도 관심은 있다고 생각했죠. 스스로 평범하다고 여기는 편이거든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대학 진학의 마음이 크지 않아서 취업을 하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다 군대가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사람들이 전국 팔도에서 각자의 목표와 소신을 갖고 모이는 곳이더라고요.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고,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옷 밖에 안 떠오르는 거예요. 전역하고 돈을 모으면서 결심했죠. 대학에 가보자. 그렇게 늦깎이로 패션 전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것들이 폭발하는 시간이었겠어요.
    늦게 입학한 것이 저에게는 축복이었어요. 목표를 갖고 학교에 다니니 흡수력이 정말 높더라고요. 입학 전에 했던 사회생활과 연관 지어서 사고할 수 있었고, 덕분에 추상적인 개념의 수업들도 이해하기 힘들지 않았어요. 전공을 백분 살렸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와 관련된 올라운더로 활동하고 있죠. 

    없는 직업을 만드신 것 같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4년 정도 축적되니 점점 특기가 생기고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런 형태로 일하기 전에는 카멜 커피 직원이었어요. 홀 매니저 겸 바리스타로 일했었죠. 저는 일하는 것 자체를 무척 좋아해요. 카페 업무도 너무 재미있었고, 그런 모습을 모두 좋게 봐주셨어요. 
    하지만 저의 목표가 커피에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취업을 하러 떠나겠다고 하니 카멜 대표님께서 지금의 저의 일을 제안하신 거예요. 제가 가진 장점들이 브랜드와 협업하기에 좋을 것 같다고요. 그렇게 블링크와 삭스타즈에 직접 다리를 놔주셨어요.

    귀인이시군요. 브랜드 측에서는 종진님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사실 브랜드에 있어서 저의 역할은 ‘플러스알파'예요. 그래서 더 어려운 면도 있지만, 다행히 서로의 니즈가 잘 맞았어요. 간단한 MOU 계약서를 쓰고, 가볍게 시작해 보자고 한 게 벌써 4년이 흘렀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잘 안 그려지는데요, 설명을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브랜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을 맡고 있어요. 브랜드가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는 거예요. 콘텐츠는 기본이고 비주얼 디렉팅이나 매장 인테리어를 손보기도 하고요, 기존에 없던 일을 기획해서 제안하기도 하죠. 삭스타즈의 경우 협업을 시작할 당시, 남성 양말을 좀 더 부각 시키고자 하는 니즈가 있었어요. 그래서 ‘에첼'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타깃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결과가 좋았죠.



    공교롭게도 양말, 남성복, 안경의 카테고리가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도 시너지를 내기 딱 좋아요. 의도하신 건가요?
    단발성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카테고리가 겹치면 안 돼요. 협업하는 브랜드들도 서로 시너지가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있어서 만족스럽네요.

    하지만 확장성 면에서는 한계가 있지 않나요?
    그래서 단일 브랜드보다는 편집숍과의 협업을 지향해요. 폭넓게 플레이할 수 있거든요. 삭스타즈, 아티지, 블링크 모두 편집 브랜드이고 국내에서는 해당 영역에서 그만한 볼륨을 자랑하는 곳이 없어요. 물론 저도 다른 브랜드를 소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다른 맛을 봐야 비교도 해보고 구체적으로 스토리텔링할 수 있으니까요. 감사하게도 세 대표님들 모두 개방적인 분들이라 부족함 없이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협업 브랜드를 선택할 때 카테고리와 규모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적인 기준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진심으로 좋아해야 해요. 관심이 없는 무엇을 소개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굉장히 솔직한 성격이거든요. 다행히 이런 진정성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우선 진짜로 좋아하는 브랜드여야 하고, 두 번째는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함께 성장할 여지가 있는 브랜드를 선호해요. 이미 폭발적인 파워를 가진 브랜드라면 제가 덕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제가 굳이 필요할까요?



    삭스타즈와 협업을 시작한 4년 전에 비해 남성 양말은 어떻게 성장했나요?
    시장이 커진 게 확실하게 느껴져요. 정말 기쁜 사실 하나는, 제 주변에 삭스타즈 양말을 안 신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이건 제품이 좋다는 뜻이에요. 처음이야 저를 통해 구매해 볼 수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제품 때문이거든요. 그 첫 번째 단계에서 제가 하는 일이 바로 고객과 제품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거예요. 왜 좋은지, 일상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 어떻게 즐기면 좋은지 제안하는 역할을 잘 하는 것 같아요.  남성 양말이 아무리 성장했다고 해도 여전히 대다수는 보수적인 편이에요. 저 역시 삭스타즈와 일하기 전에는 양말까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직접 경험해 보니 신세계더라고요. 그래서 자신 있었어요. 소개만 잘 하면 대단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잘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맞아요.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우선 제품이 좋아야 하죠. 삭스타즈와의 워크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나요?
    이제는 호흡이 착착 맞아서 대단한 프로세스라고 할 것도 없어요. 삭스타즈 온라인 몰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제품을 확인하고, 실물을 소개하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대표님께 제안하는 정도예요. 대표님도 대게 많이 고민하지 않고 컨펌하는 편이고요. 예를 들면 올해 초, 삭스타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 본메종의 룩북을 촬영했어요. 본 메종은 매체가 양말일 뿐이지 니팅 아트와 다를 바 없는 하이엔드 브랜드예요. 그 업적을 기리는 아카이빙 콘텐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수년간 신은 본메종 양말들을 패치워크로 꿰맨 패브릭 포스터 작업을 했어요. 어머니와 둘이 앉아 90시간 정도 바느질을 한 것 같아요.

    굉장히 노동집약적인 작업인데, 스스로 하셨다는 점이 놀라워요.
    대표님은 가볍게 해보라고 하셨지만 그런 스타일이 못 돼요. 고생스러울 때도 있지만 저는 그럴 때 되려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룩북 작업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가져왔나요?
    매출은 자세히 모르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본메종 본사에서 관심을 보이면서 연락이 왔거든요. 이건 삭스타즈라는 브랜드에 큰 의미가 있고, 제가 생각하는 삭스타즈의 넥스트 스텝이에요. 바잉과 판매는 누구나 하려면 하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다르거든요. 

    얼마 전에는 JJ 에디션 양말까지 론칭하셨죠.
    삭스타즈와 롱런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고민하다가 양말을 만들자고 제안 드렸어요.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고민을 해요. ‘언제까지 이것만 할 수 있을까'가 바로 그것이죠. 반대로 브랜드 입장에서는 동기부여를 해줄 방법을 고민하고요. 양측의 니즈를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콜라보라고 생각했어요.

    꽤 많은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브랜드 입장에서도 작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역할을 도맡아서 했어요. 디자인은 물론 모델, 촬영, PR 등이요. 대표님은 생산을 비롯해 투자해 주셨고요. 건강한 윈윈의 구조라고 생각해요. 저도 떳떳하고, 삭스타즈 제품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리고 원래 삭스타즈의 남성 양말 모델이 대부분 저예요. 80% 정도? 대표님께서 저를 처음 보자마자 발 예쁘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그래픽이 꽤 다양했는데, 아무래도 남성복과의 매칭을 많이 고려하셨겠죠?
    우선적으로는 제가 신고 싶은 양말을 만들었어요. 더 과감하게 디자인하고 싶었지만 범용성을 고려해서 쉽게 신을 수 있는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비슷한 컬러톤을 선택해서 하나의 컬렉션으로 보이게끔 했고요. 욕심부려서 난해해지지 않도록 조심했어요.



    반응이 좋았던 디자인은 어떤 것이었나요?
    오프라인에서는 하트 그래픽이나, 발 부분의 명칭이 적혀있는 모델이 많이 사랑받았다고 해요. 온라인에서는 레오파드도 반응이 좋았고요. 아무래도 온라인에서는 시각적으로 임팩트 있는 제품들이 잘나가요. 개인적으로 수익적인 측면보다는 자기만족이 아주 큰 작업이었어요. 1년 동안 준비했거든요.

    어린이날에 쇼룸에서 론칭 행사를 했는데 비가 많이 왔어요.
    코로나 때문에 삭스타즈도 이벤트에 대한 갈증이 있던 차에, JJ 에디션을 론칭하면서 오프라인 행사까지 해보자는 계획이 있었어요. 쇼룸 앞 골목이 한적하고 위층에 리사르 커피도 있어서, 함께 즐기는 시간을 상상했는데 비가 쏟아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많이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마주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평범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수고롭게 오실 수 있을까. 그 순수한 마음에 모든 걸 보상받은 날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양말은 콘텐츠였고 주목적은 만남이었어요.

    앞으로 커뮤니티가 되지 못하는 브랜드는 살아남기 조금 어렵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물건은 너무 많고 쉽게 대체 가능해졌기 때문이에요.
    그런 면에서 삭스타즈는 로열티 레벨이 높은 브랜드예요. 앞으로도 오래 승승장구할 거예요. 브랜드의 손익을 떠나서 기회를 주시는 대표님의 응원이 항상 좋은 원동력이 되어줘요.

    애송이들(박종진 팬의 애칭)에게 주실 양말 팁이 있다면요?
    방향은 딱 두 가지예요. 양말로 포인트를 주느냐, 아니면 룩에 스며들게 하느냐. 쉽게 접근하려면 바지나 신발과 톤을 맞추고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소재로 변주를 꾀할 수 있죠. 과감한 걸 좋아하신다면 대비가 강한 컬러를 선택하세요.



    여러 개의 브랜드와 깊이 협업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협업보다는 각 브랜드에 완전히 소속되어 있는 직원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디렉터라고 여겨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회사 입장에서 생각을 많이 해요. 표면적으로는 이상적인 기획들이 실질적으로 회사에 득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거든요. 본메종 룩북의 경우, 사실 우리 브랜드도 아니고 부담스러운 예산을 들여가면서 룩북을 찍을 필요가 없어요. 회사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적은 투자로 최대치의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제 모토가 저예산 고효율이에요. 

    종진님 안에 이상과 현실이 공존해요. 저예산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는 종진님만의 전략이 있나요?
    간단해요. 제 몫에 너무 욕심부리지 않으면 돼요. 보통 룩북을 찍을 때 디렉터, 포토그래퍼, 모델, 헤어 메이크업, 공간 등이 필요한데 그중 세 가지 역할을 직접 할 수 있어요. 미련하다고 여기는 시선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나씩 쌓아가면서 주변에 좋은 인프라가 형성돼요. 물론 언제까지고 이런 방식으로 일할 수는 없겠지만, 다 맞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회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예산을 책정하지 않는 게 기본이고, 그럼에도 정말 좋은 기회가 있다면 대표님께 제안을 드려요. 그리고 저도 투자하죠. 정말 해내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사비를 쓰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동반성장하는 겁니다.
    더불어 내부의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겉에서는 알 수 없는 내부적인 상황과 입장이 있잖아요. 민감한 사안들을 고려해서 일하는 센스가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직원처럼, 더 나아가 운영진의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밖에 없어요.

    브랜드들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운 존재겠어요. 언젠가는 종진님의 사업체나 브랜드를 꾸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요.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바로 그거예요. 현재는 혼자 많은 부분을 해결해야 하니 한계가 있어요. 위가 열려있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조급한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요. 저는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회사를 차리고 일을 많이 하고 그만큼 더 번다고 행복할까? 잘 모르겠거든요. 좋음에 대한 기준이 높고, 그것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스스로 극한으로 몰아세울지 알기 때문에 선뜻 결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합니다.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에요.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