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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에디터들의 책장
    • 저지르고 수습하기의 묘미 : 마라톤 1년차
    • EDIT BY 유잎새 | 2023. 7. 31| VIEW : 1538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다. 동네가 바뀌었다는 것은 새로운 달리기 코스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집 근처에 한강이 있을 때는 별다른 고민 없이 항상 같은 길을 향해 달렸다. 집에서 5분간 국민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나와서 5분 정도 걸으면 한강 공원이다. 코스는 정해져 있으니, 그날의 기분에 따라 몇 킬로 혹은 몇 분을 뛸지만 정하면 됐다. 새로운 동네에는 한강이 없다. 그 대신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이 동서남북 어디로나 펼쳐진다. 열 손가락이 넘는 경우의 수 사이에서 최적의 달리기 코스를 찾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건 ‘런데이’ 어플을 통해서였다. 누구나 30분을 뛸 수 있다는 런데이 어플의 주장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불신과 함께 첫날을 시작했다. 1분 달리고 2분을 걷는 어딘가 싱거운 코스. 별 거 아니네 하는 마음으로 다음 날 30초를 늘리고, 다시 30초를 늘리다 보니 어느새 10분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진득하고 꾸준한 연습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실감하며, 쌓여가는 1분 1분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던 날들. 한 번에 30분을 달리면 하늘에서 팡파르라도 울리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30분을 달린 감각만이 온몸에 고스란히 남았다. 더 이상 달리기가 두렵지 않았다.

    달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마라톤을 하는 친구들이 조금씩 늘어날 때, 다카기 나오코의 만화책 《마라톤 1년차》를 읽었다. 집에서 그림만 그리던 사람이 어느 날 TV에서 방영된 도쿄 마라톤의 풍경에 감동하여 무작정 달리기를 결심한다.

    그 뒤로 펼쳐지는 나오코 씨의 마라톤 여정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책이 없다. 일단 달려보자! 의 마음은 일단 대회에 나가보자! 로 이어져서 나오코 씨는 달리기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5km, 10km, 하프에 이어 풀마라톤에 참가한다. 풀코스를 뛸 수 있기 때문에 참가하는 게 아닌, 일단 신청해 두고 어떻게든 체력을 욱여넣는 여정.

    나오코 씨가 마라톤 동료와 함께 일본 각지를 돌며 대회와 식도락 파티를 즐기는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저지르고 수습하는 소동에 동참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거봉이 특산물인 야마나시 시에서는 완주 선물로 거봉을 받고, 굴이 유명한 마쓰시마에서는 피니쉬 라인 뒤에 있는 굴국 서비스만을 기대하며 달리고, 모든 대회 끝에는 살뜰하게 포상 맥주를 즐기는 나오코 씨를 보며 나도 조금씩 달리는 거리를 늘려갔다. 작년 11월에는 처음으로 10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우르르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대회의 기분을 흠뻑 즐기다 보니 어느새 피니쉬 라인에 서 있는 내가 있었다.

    왜 달리냐고 물어보면 몇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달리는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건강이나 심폐 지구력, 다이어트의 목적보다는 달리면서 웃는 순간이 주는 은밀한 즐거움이 크다.

    풀마라톤까지 달성한 1년 차에 이어 마라톤 2년 차가 된 나오코 씨는 더 빠른 기록, 많은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때 나오코 씨의 마라톤 동료가 말했다.
    “꼭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되잖아?” 좋은 마라톤이란, 주변 사람에게 끌려가지 않고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지키며 기분 좋게 완주하는 것. 그렇게 결론 내린 나오코 씨는 ‘목표를 정한다면 건강하게 달릴 수 있는 할머니 주자’, 그리고 언제까지나 맛있게 포상맥주를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장기적인 목표를 수정한다.

    달리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달리는 것으로 얼마나 건강해지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상체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허벅지와 무릎의 감각, 적당한 리듬으로 쿵쿵 뛰는 심장을 인지하며 길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좋다. 코치의 조언에 따라 달리며 씩 웃어보는 순간이 좋다. 그리고 이 작고 소박한 즐거움만으로 충분한 달리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언제까지나 맛있는 포상맥주를 마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