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댁은 대천 해수욕장에 있다. 말 그대로 할머니 댁에서 걸어서 3분 정도의 거리에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그렇다 보니 방학마다 대천에 갔지만 그곳은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과 피서객들이 넘쳐나 정작 나는 사람에 치이는 게 싫어서 여름의 해수욕장을 즐겨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에게 대천 해수욕장은 뜨거운 여름의 시끌벅적한 머드축제가 아닌 쌀쌀한 바닷바람이 뺨을 따끔하게 치고 가는 설 연휴의 한산한 겨울바다로 남아있다. 그렇게 조개껍데기가 오랜 세월 동안 잘게 부서져서 만들어졌다는 해변을 매번 신을 신고 밟았다.
미취학 시절의 나는 놀이터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특히나 여름에 샌들을 신고 놀이터에 가면 발가락 사이사이에 들어오는 모래 알갱이가 너무나도 싫어서 벤치 위에 앉아 신나서 괴성을 지르며 노는 다른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만 보다가 반동을 이용해 아스팔트 위로 휙 뛰어내리곤 했다. 모래 한 알의 접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는 친구들과 노는 즐거움보다도 컸다.
그런데 우리 딸은 어린이집 텃밭에서 신나게 놀다가 손톱 밑에 모래가 낀 채로 집에 온다. 야외에 나가서 모래나 흙바닥이 있으면 지체 없이 엉덩이를 대고 털썩 앉는다. 해변가에선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신발을 벗고 맨발을 내딛는다. 근 사십 년 가까이 모래를 피해 다닌 나로서는 이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지만 동시에 나처럼 까탈스럽게 굴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지난달에 굳게 다짐했건만 이번 여름엔 아직도 바닷가에 가지 못했다. 여름이 모두 끝나버리기 전에 대천에 가야겠다. 한층 시원해진 바람이 불 테고, 이제 나는 흥겨운 딸의 작은 손에 이끌려 맨발로 따뜻한 모래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