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JOURNAL

  • 룬아의 인터뷰
    • 가장 우리다운 옷을 입으면 : 키티버니포니
    • EDIT BY 룬아 | 2023. 8. 24| VIEW : 26565

    가장 우리다운 옷을 입으면 : 키티버니포니 달리는 지하철에 앉아 멍하니 승객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로고들이 있습니다. 여성들이 어깨에 멘 패브릭 가방 끄트머리에 달린 택은 주로 ‘kbp’. 주인의 무드를 닮은 그 가방 안에는 어떤 키티버니포니 (이하 KBP) 파우치가 들어있을까 상상해 봅니다. KBP 파우치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홍대 골목길의 하얗고 작은 쇼룸부터 합정동 사옥까지, KBP는 15년 동안 꾸준히 성장했어요. 그 흔한 성수동이나 더현대 팝업 같은 이슈도 없이, 묵묵하게 패턴을 개발하고 제품을 만들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중입니다. 이토록 정적인 마케팅 모드를 선택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그냥 재능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 김진진 대표는, 약점에 연연하기보다 강점을 살릴 줄 아는 외유내강형 리더였습니다.

    삭스타즈와 KBP가 함께 스포츠 양말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KBP다운 컬러와 디테일로. 하얀 양말 한번, 까만 양말을 한번 신고 테니스를 쳤어요. 장비 탓하지 말라고 하지만 잘 갖추면 기분이든 실력이든 좋아지는 것은 확실하죠. 음, 왠지 까만 양말을 신은 날 더 잘 친 것 같아요.

    김진진 - 키티버니포니 대표

    KBP는 국내 패브릭 디자인의 선구자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있을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KBP는 ‘패턴과 컬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패브릭 브랜드'라고 여기고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블랙 제품들이 가장 인기가 많지만요.

    저 역시도 블랙 제품을 많이 쓰는데요, KBP의 제품들은 블랙에서 그치지 않고 어딘가 숨어있는 자수나 패턴이 특별함을 더해줘요.
    맞아요. 그 틈에서 느껴지는 패턴과 컬러들이 일상을 환기해 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모노톤을 좋아하는 분들도 KBP를 선택하시는 것 같아요. 저와 직원들은 피부도 검은색이 아니냐고 할 만큼 평소에 블랙을 즐겨 입는데, 그래서인지 패턴이 주는 즐거움을 잘 알고 있어요.

    브랜드의 이미지와 실질적인 운영이 되게끔 하는 카테고리가 다른 점이 재미있네요.
    이미지는 화려한가요?

    화려하다기보다는, KBP 얘기를 하면서 블랙을 논하지는 않으니까요. 패턴과 컬러 이미지가 강하죠. 그래서 마리메꼬(핀란드)나 미나 페르호넨(일본)이 연상된다는 피드백도 있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리메꼬는 70년, 미나는 30년 정도 된 브랜드인데 셋 다 각국에서 패브릭 디자인으로써의 대표성이 있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차별점이 있다면 지역성이에요. 유럽과 일본, 한국의 라이프스타일과 기후, 집의 형태 등이 다르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보다 컬러에 개방적이에요. 집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을 뿐이죠. 주로 아파트에 거주하다 보니 커튼이나 베딩에 적정 규격이 있고, 특히 청결에 예민해서 세탁을 자주 해요. 그래서 소재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렇게 보니 또 각각의 특성이 뚜렷하네요. KBP 입장에서는 글로벌 선배가 있는 격인데, 그들의 행보에서 배우는 게 있나요?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가까운 일본 브랜드에 더 공감하게 되는데요, 미나는 로컬에 충실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요. 100년 브랜드를 지향하면서 후세에 잘 물려주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죠. 저 역시 비슷한 마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디자인을 거의 도맡고 계시죠?
    이제는 꽤 분배가 많이 되었어요. 저 포함 디자이너만 4명이에요. 전 직원의 20%에 달하죠.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회사이기 때문에 그래요.

    어느덧 조금씩 물러나는 때가 오고 있군요.
    그래야 해요. 마리메꼬나 미나보다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시장의 흐름은 훨씬 빠르게 변했어요. 제가 브랜드를 계속 붙들고 언제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요? 모든 분야에서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되는 회사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직원들이 오너쉽을 가질 수 있게끔 노력을 많이 해왔어요.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에도 필요하지만, 구성원마다의 특출난 영역이 생기는 건 중요해요.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최대한 느낄 수 있게 했죠. 자기의 생각이 담긴 제품이 시장에서 반응을 보이면, 성취감과 더불어 소속감이 생겨요. 직원들과 브랜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눠요. 제가 50대가 되면 그들도 40대가 되거든요.

    장기근속 직원들이 많은가 보네요.
    현재 두 명이 10년 넘었고, 올해가 지나가면 3명이 추가돼요. 회사의 25%가 10년 근속이 되는 거죠.



    패턴북이 출간된 것이 벌써 몇 년 전이라는 게 무섭네요 (웃음). 패턴이 상당히 많았는데, 1년에 대략 몇 가지가 개발되어야 하나요?
    콜라보레이션, 자수, 베리에이션을 제외하고도 12~15개 정도예요. 15년 동안 170개 정도 했더라고요. 회사가 쉬지 않고 돌아가요.

    정말 많네요. 그런데 언제나 패턴이 우선이라고요. 아이템을 먼저 구상한 뒤에 패턴을 개발해도 되지 않나요?
    KBP는 패턴 디자인 패브릭 회사니까요. 아이템을 우선으로 둔다면 제품 회사일 거예요. 공정 면에서 보면, 원단의 최소 생산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몇 가지 제품만을 위한 패턴을 개발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올해 출시된 디자인 중에서는 빨간 사과 패턴이 눈에 띄는데, 어떤 기준으로 패턴을 개발하나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세계일 것 같아요.
    연말이 되면 다음 해 연간 계획을 세워요. 큰 그림을 그려야 제품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요. 몇 년 전에 산 베개 커버와 오늘 산 이불이 잘 어울렸으면 좋겠거든요. 15년 차가 되니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일들이 분명히 있어요. 전체 구성에서 부족한 컬러가 있으면 그 컬러에 어울리는 모티브를 찾기도 하고, 볼드한 패턴이 많으면 섬세하거나 반복적인 패턴을 만들기도 하죠. 한국 사람들은 녹색을 참 좋아해요. 블랙 다음으로 가장 판매가 높은 컬러예요.

    새로 제작하는 패턴이 많은 만큼 단종되는 패턴도 정말 많겠네요.
    맞아요. 보기보다 훨씬 많을 거예요. 올해 출시한 수영 모자도 대부분 판매되었고 곧 단종할 예정이에요. 필요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가졌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요. 스테디 아이템들도 있지만, 재미있게 해보자고 시작한 프로젝트들은 짧게 끝내는 편이에요.

    사이클이 빠르군요. KBP는 희소성이 높은 브랜드였네요! 일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잘 되는 일을 끊는 건 더 어렵잖아요. 절제력이 대단해요.
    조절을 해야 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업가였다면 물 들어온다고 밀어붙이겠지만요. 하지만 KBP에게 중요한 건 수모가 아니라 리빙 패브릭이에요.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오래 일한 직원들에게 의견을 구해요. 아무래도 저보다 훨씬 객관적이거든요. 수모나 양말 같은 아이템은 일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건에 해당해요. 매일 똑같은 것만 하면 지겹잖아요. 저는 회사가 조용하면 위기감을 느껴요. 새로운 게 필요해.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 그럴 때 서로 아이디어를 던지죠. 수모 같은 경우는 회사에 수영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도전한 아이템이었어요.

    그래서 콜라보레이션을 자주 하는군요. 경영적인 면에서의 프로젝트와, 재미를 부여하는 프로젝트가 있겠어요.
    대기업 콜라보레이션이 경영 면에서 도움이 되죠. 양도 많고,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창구가 돼요. 품목이 새로워서 오는 재미도 있고요. 작업 중에 나온 아이디어들이 역으로 KBP에 적용되기도 해요. 그렇다고 수익만으로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럴수록 서로의 철학이 잘 맞아야 해요. 삭스타즈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재미를 더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확실히 외부 디자이너나 작가들과의 협업이 주는 신선함이 있어요. 다만 저희는 뭔가를 이루기 위한 일을 하진 않아요.

    그냥 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하는 거예요. 특별히 매출을 많이 올리겠다, 이슈를 만들겠다 등의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고자 하는 마음으로는 거의 하지 않아요.

    ‘하기 위함'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뜻으로 들리네요. 양말은 예전에 타 브랜드와 협업하다가 한동안 중단되었는데 작년에 삭스타즈와 손을 잡았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2018년에 처음 양말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놀라울 만큼 좋았어요. 일주일 만에 다 소진될 정도였죠. 양말 시장이 커지기 시작한 시점일 수도 있어요. 협업이 몇 차례 이어졌지만 역시 KBP의 중심은 양말이 아니기에, 중단하기로 했어요. 그 뒤로 4년이 지난 어느 날, 집에서 양말을 찾아 신는데 다 헤지고 없는 거예요. 아, 다시 만들어야겠다.

    정말 개인적으로 필요해서 만들었군요 (웃음). 뭔가 이루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게 이해가 됩니다. 작년 겨울에 출시된 양말도 예뻤지만 이번에 나온 걸 보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스포츠 양말’이라고 했어요. 여기저기 KBP다운 디테일이 숨어있는데 운동화를 신으면 최소한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떤 운동복과도 잘 어울리는 거예요.
    스포츠 양말은 사실 작년에 제안한 도안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삭스타즈 대표님이 보시고 스포츠 양말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저장만 해두었죠. 역시 전문가의 눈은 정확해요. 개인적으로 양말 자체가 예쁘고 화려한 쪽에는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하지만 어디 가서 신발을 벗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겉으로는 코디를 과하게 침범하지 않는 디자인이어야 하죠. 그래서 디테일들이 발바닥이나 발목 뒤쪽에 많이 배치되어 있어요. 대놓고 티 내진 않지만 사실은 이런 걸 즐거워하는 사람이야, 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취향도 비슷해요. 그래서 KBP 제품들을 좋아하나 봐요. 그나저나 이토록 완벽하게 스포츠 양말다운데 원래는 스포츠 양말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었다니, 재미있네요.
    디자인은 KBP가 했지만, 양말 자체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삭스타즈의 의견을 따랐어요. 성태민 대표님은 타협을 잘 안 하세요.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수정 요청을 하실 법도 한데, 제안한 디자인을 최대한 구현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샘플을 한참이나 보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연락이 너무 없어서 의아했는데, 본인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미팅을 안 잡으세요. 그 뒤로 조용하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생각하죠.

    삭스타즈 콜라보레이션 중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이 있어요?
    저는 앨리스 블랙과 레드 좋아해요. 옛날 편직기로 짠 양말이거든요. 약간 도톰하고 성글고, 빈티지한 느낌이 있어요. 운동화를 신으면 패턴도 거의 보이지 않아요. 물론 제일 잘 팔리는 건 까만 토끼고, 그럴 거라 예상은 했어요.

    저도 다 갖고 있는데 가장 손이 자주 가는 건 까만 토끼더라고요 (웃음). 앨리스 레드도 더 자주 신어줘야겠어요.



    사실 길거리에서 KBP 로고를 심심찮게 발견해요. 어느새 국민 브랜드 대열에 들어섰구나,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가 물론 디자인도 좋지만 실용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쁘면서도 합리적이고, 좋은 제품. 브랜드가 규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키포인트가 아닐까요?
    최선을 다해 만들었는데 예쁨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리빙 아이템이라 자연스레 실용성을 중시하게 되는 경향도 있고요. 귀엽고 쓸모없는 것도 가끔 만들지만 그런 아이템은 극소수예요. 샘플이 나오면 무조건 세탁해 보고, 지퍼가 끼진 않는지, 봉제 라인이 뒤집어지진 않는지, 이염은 없는지, 꼼꼼히 체크해요.

    몇 가지 제품들을 써보면서 수납에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행 갈 때 캐리어 안에 KBP 로고가 몇 개인지 셀 수 없어요.
    저뿐 아니라 직원들도 정리하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그 이전에, 패브릭이 주 소재라는 점이 한몫하죠. 패브릭은 자체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뭘 담아야만 본래의 형태를 보여줄 수 있어요. 숙명적으로 수납용품이 많아진 셈입니다.

    여러가지 장점 중에서도 항상 사이즈가 탁월하다고 느꼈어요.
    샘플을 정말 많이 보거든요. 1cm씩 바꾸면서 만들어봐요. 특히 책가방에 디테일이 정말 많이 들어갔어요. 보통 가방들은 폭이 넓어서 지퍼를 열면 내용물이 잘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폭을 살짝 좁게 했고, 앞주머니에 자잘한 물건을 많이 담기 때문에 앞주머니가 큰 편이에요. 히든 지퍼는 자꾸 원단에 끼니까 오픈으로 만들었고, 우산이나 물통 같은 걸 넣을 수 있는 옆 주머니, 그리고 노트북 패드도 있어요. 처음에는 10만 원대 책가방을 누가 살까 싶었는데 생활에서 비롯된 디테일을 알아봐 준 분들이 많아져서 베스트 아이템이 되었어요.

    제가 백팩을 쓰면서 불편하다고 느꼈던 점이 다 보완된 제품이군요! 한편 패브릭 포스터 같은 장식적인 제품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실용적이지 않은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사라져요. 나이가 들면서 비워내는 삶을 추구하게 되기도 했고요. 회사에서 컬러와 패턴 작업을 많이 하면서 욕구가 해소되는 효과도 있어요. 사실 귀여운 거 엄청 좋아하거든요. 바우하우스도 좋아하지만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도 좋아해요. 취향의 폭이 넓은 편이고, KBP에 다 녹아들어 있어요.

    그래서인지 KBP가 품고 있는 무드의 스펙트럼이 꽤 넓어요. 거기에서 오는 반전 매력도 있고요.
    너무 귀여워지지 않으려고 주의해요. 개인적으로는 마이멜로디도 좋아하지만, KBP 토끼는 마이멜로디 같으면 안 돼요. 너무 어려지면 안 되는 거예요. 제품을 만들 때, 제가 직접 쓴다고 상상하면 쉬워요. 수모가 론칭되고 수영복 문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저는 패턴이 강한 수영복은 못 입겠거든요. 용기가 필요한 아이템은 만들지 않아요. 그래서 누구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나 봐요. 아름다움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다면 디자이너 브랜드가 되었을 테고 실용성만 따졌으면 그야말로 대중 브랜드가 되었을 텐데, KBP는 그냥 오래 하다 보니 고객층이 두터워졌어요. 조금 특이한 브랜드예요.

    백자 항아리 안에 알록달록한 사탕이 담겨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KBP의 많은 것들이 대표님의 관심사에서 비롯되는데, 꾸준히 눈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겠어요.
    KBP는 저 혼자 하는 브랜드가 아니에요. 연령대도 다양하고 라이프스타일도 다른 직원들에게 질문을 많이 해요. 결혼이나 자녀의 유무도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결정적으로는, 의견을 실제로 제품에 반영한다는 게 중요해요. 저는 카메라를 잘 안 써서 몰랐는데, 사진 취미가 있는 직원이 카메라 파우치를 제안했고 결국 스테디셀러가 되었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가 시간을 보내면서도 끊임없이 관찰해요. 겨울마다 스키 여행을 가는데, 조만간 관련 아이템이 나올 것 같아요. 제 삶의 모든 활동이 KBP와 연결되어 있죠.

    전에 테니스도 잠깐 하시더니 테니스 파우치가 출시됐죠 (웃음). 뭐라도 조금씩 경험해 보는 게 모두 밑천이 되네요.
    하라 켄야가 한 말이 있어요. ‘본업이 아닌 일에 미래가 있다.’ 그런 일에 잠재력이 숨어있거든요. 뭐가 언제 발견될지 몰라요. 많이 경험해 봐야 해요.

    KBP의 중심은 균형이네요. 사람들의 삶 안에서도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적당한 자기표현과 만족감,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과 의외의 매력 포인트.
    정말 그러네요, 균형. 이상한 말이지만, 패턴 브랜드임에도 패턴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요. 없는 것 같은데 있고, 있는 것 같은데 없는 정도를 원해요. 얼마 전에 ‘헬리녹스’ 인터뷰를 읽었는데, 제품을 잘 만들면 마케팅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대목에서 응원을 받았어요. KBP는 굉장히 내성적인 조직이거든요. 그게 가끔은 괴로울 때가 있어요. 워낙 들썩들썩한 시대니까요.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우리의 방식도 옳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다만 제품력도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 돼서, 브랜드를 어필하는 숙제는 계속 머무르겠죠.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많은가요?
    사실은 없어요. 여태껏 마케팅에 별로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뭘 하는 것도 남의 옷을 입는 기분이에요. 도쿄 팝업을 앞두고 있어요. 일본 인플루언서들을 초대해야 하나, 몇 가지 고민이 있었지만 가장 KBP답게 하기로 했어요. 우리를 잘 보여주는 데에 집중하자.

    계속 신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슈가 되는 것 같아요. 자연스레 마케팅에 대한 니즈가 크지 않을 수 있겠네요.
    맞아요.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제품에 집중하기에도 빠듯해요.



    KBP가 있기까지 아버지의 의지가 큰 주춧돌이 되었죠. 여전히 아버지의 공장에서 상당 부분 생산이 되나요?
    이제는 협력 공장이 많아요. 서울, 지방, 해외에 포진되어 있죠. 아버지의 공장에서는 샘플 작업이나 다른 곳에서 받아주지 않는 까다로운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독립적인 회사가 되었네요.
    거의 그래요. 예전에는 아버지께 의견도 많이 물었는데 지금은 동생도 많이 관여하고 있고,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대표님의 정체성이 상당 부분 담겨있지만, 아버지에 의해 시작했고 평생을 기여할 일이 되었어요. 주어진 일을 해나간다는 건 어떤지 궁금해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일이 그렇겠지만, 어떤 날은 지겹고 어떤 날은 신이 나고 어떤 날은 도망가고 싶고 어떤 날은 좋아죽겠고, 왔다 갔다 하죠. 희망적인 날들이 있는 만큼 감옥에 갇힌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날도 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월요일에 출근하면 모든 고민이 사라져요.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해결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부족하니까요. 그렇게 15년이 흘렀어요.

    진리는 변하지 않네요. 오늘 할 일을 한다.
    원대한 꿈을 꿀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요. 언제까지고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져요. 하지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오늘을 무사하게 보냈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매일 열심히 사는 것, 그게 다예요.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면서 생긴 굳은살 같은 거네요.
    맞아요. 조소랑 비슷해요. 흙을 덕지덕지 붙이다가 매끈하게 다듬고, 또 덩어리를 붙였다가 또 다듬고. 그렇게 어떤 나이가 되면 완성에 가까워지고. 겉에서 보면 이미 40대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잖아요. 사람이나 브랜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