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태리 멋쟁이들의 발 몽타주를 그려볼 참이다. 지금 내 눈앞에는 패션의 성지라 불리는 밀라노에서 날아온 양말들이 놓여 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에 이어 네 번째로 우리 매장에 입성한 유럽 브랜드다. 아이스 브레이크를 위해 먼저 통성명을 시도했다. 브랜드 이름은 마리아 라 로사(MARIA LA ROSA), 이탈리아어 사전을 찾아보니 la는 정관사인 모양이고 rosa는 장미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약간 동방신기의 최강창민 느낌으로 본인 이름에 어울리는 수식어를 붙인 작명이 아닌가 싶다. 이탈리아 사이트에도 들어가 보았다. 역시 마리아 라 로사는 창립자의 이름이었고, 그가 시칠리아 출신이며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영감을 이끌어온다는 것까지 구글 번역이 알려주었다. 어쩐지! 이번에 매장에 입고된 범상치 않은 양말이 탄생한 배경이 이제 이해가 간다. 고급스러운 메리노울 립 삭스의 종아리 뒤쪽을 반짝이는 큐빅으로 장식한 양말인데, 공상이 취미인 F 성향 인간으로서 패션에 푹 빠진 아이가 엄마 서랍에서 꺼낸 양말에 비즈를 주렁주렁 꿰매 붙이며 뿌듯해하는 장면을 상상했었다. 이태리 멋쟁이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들어앉아 있는 걸까? 우아하면서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는 양말이란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탈리아어로 양말은 ‘깔제(calze)’라고 부른다. 30년 후쯤 은퇴하고 이탈리아 남부 시골 마을에 정착하게 되면 작은 양말 가게를 열고 ‘구달 라 깔제’라고 이름 붙여야지, 하는 망상에 잠시 빠져들었다가 불현듯 현실로 돌아왔다. 망상 속 양말 가게는 사라졌지만 내 눈앞에는 여전히 이태리제 양말들이 있다. 여행 마지막 날 들른 상점에서 기념품을 고르듯 양말을 하나하나 찬찬히 구경하고 한 켤레를 골랐다. 매시 코튼 소재의 크림색 원단에 귀여운 꽃무늬를 콕콕 수놓은 니삭스. 꽃술은 연보라색, 꽃잎은 청록색 크레파스로 칠한 것 같은 색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매시 코튼으로 만든 양말은 처음이라 촉감이 궁금해서 바로 신어 보았는데 다리에 부드럽게 착 감긴다. 통기성이 좋아서 그런지 답답하지도 않다. 이 원단으로 내복을 만들어 입히면 예민한 애기도 통잠을 잘 것 같은 느낌이다. 패션의 근본은 소재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 이태리 멋쟁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라치에(Grazie)!
양말을 한 켤레 사 신었을 뿐인데 낯선 도시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다. 12시간씩 몸을 구기고 앉아서 하늘에 둥둥 떠 있을 필요도 없고, 가장 효율적인 동선으로 숙소를 예약하느라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여행. 경비로 6만 8,000원을 지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