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JOURNAL

  • 에디터들의 책장
    • 담백하고 투명하게: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 EDIT BY 유잎새 | 2023. 9. 8| VIEW : 433

    이직한 회사는 동료들의 평균 연령대가 나보다 한참 낮다. 태어난 연도로 줄을 세우면 오래된 순에서 금방 내 이름이 나타나고, 특히 여성 동료 중에서는 제일 연장자가 되었다. 이런 회사에 다녀본 건 처음이라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동시에 시니어의 롤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어디까지가 동료와의 본딩 쌓기이고 어디부터가 주책인지, 어디까지가 함께할 일이고 어디부터는 빠져야 하는지, 하루는 잘한 거 같고 하루는 망한 거 같은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책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서 작가 임경선은 ‘나이를 잊고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마주한다. 참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듦에 대한 글은 일부러 피해온 감이 있다고 고백한다. 나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상황과 마주하면서 이 질문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이 더 떠올랐다.
    나이를 잊고 사는 게 맞을까, 아님 나이를 의식하며 사는 게 맞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그 닳고 닳은 말을 회사에서 연장자가 되어버린 사람이 실천하자니 어딘가 머쓱한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나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나를 마주하고 있는 주니어 동료에게는 생각보다 무거운 숫자인 게 아닐까? 그래서 지금 상황이 대단한 오지랖의 가능성을 품고있는 건 아닐까? 의문은 깊어만 가고 자기 계발서 어디에도 지금부터 주책이니 멈추시오, 같은 가이드는 나와있지 않아 사소한 순간들이 고민으로 다가온다.

    임경선 작가는 나이 듦을 관찰하다가 발견한 세 가지 유형에 대해 쓴다. 나이 드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나이를 먹는 ‘나이 포기파’와 나이 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의식하는 ‘나이 의식파’에 더해, 몇 살이 되어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나이 무의식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에이지리스Ageless 하게 나이 들어가며 꾸준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투명하고 담백한 무드를 발견했다고 소개한다.

    나는 어차피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반문해 보면 명쾌한 긍정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로 살아간다는 건 대단하기도, 별 일이 아니기도 하다. 나 말고는 누구도 내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없다는 점에서 대단하고,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말과 재화와 마음을 주고받으며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기에 나라는 존재는 참 별 게 아니기도 하다.

    “나이를 잊으려고 해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은 온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문제로 생각할지 안 할지, 얼마만큼 중요한 문제로 생각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 그것은 자아의 견고함 정도와 나다운 삶을 꾸려가는 정도가, 결코 나이 들어가는 속도에 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인생에서 ‘나이’가 아닌 ‘나라는 사람’이 더 짙어지는 것이다.” 나다운 나이 듦, 나다운 리더십이란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말을 따라가며 내가 생각하는 에이지리스의 삶을 정의 내려본다.

    내가 닿고 싶은 에이지리스한 삶은, 상냥한 말과 다정한 배려의 힘을 믿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솔직하게 상대를 대하며 모두가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잊지 않는 삶. 타인의 마음을 억지로 사려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공기로 호흡하는 삶. 평범한 사람인 내 한계를 인정하는 삶. 바꿀 수 있는 건 나의 말과 행동뿐임을 기억하며 내 손을 떠난 일에 연연하지 않는 삶. 그렇기에 나를 바꿈으로써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을 온전히 믿는 삶.

    대단하기도 별 일이 아니기도 한 나 자신의 삶을 자분자분 만들어 나간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 나이를 먹었고 한걸음 더 나 자신에 가까워졌다. 담백하고 투명하게, 나이 너머의 나를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