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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룬아의 인터뷰
    • 원석을 보석으로 깎는 일: 디자이너 나하나
    • EDIT BY 룬아 | 2023. 9. 28| VIEW : 1007

    원석을 보석으로 깎는 일 : 나하나 브랜드 디자이너 수년 전,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 명함 하나만 뽑아줘.” 당시 제가 디자이너라는 이유로 쉽게 던진 말이었죠. 명함을 디자인하려면 일단 로고가 필요하고, 로고를 만들려면 어떤 가게인지 알아야 합니다. “(친구니까) 50만 원만 줘.”라고 대충 비용을 대자 매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협업은 성사되지 않았고요.

    그 친구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에요. ‘브랜딩', 또는 ‘브랜드'라는 개념마저 생소한 때였으니까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 브랜딩이라는 용어를 귀가 따갑도록 듣지만 국내에 스몰 브랜드 시장이 꽃피우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브랜딩 디자인이라는 분야도 고개를 들었지만 브랜딩의 개념을 생소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아요. 관련 작업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마저요.

    브랜딩을 명확히 의식하지는 않더라도, 십여 년 전부터 무언가를 운영해 온 사람들이 있죠. 브랜드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성장하는 여정에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리브랜딩이라는 것을 합니다. 삭스타즈는 얼마 전, 디자이너 나하나와 손잡고 브랜드 구축에 힘을 실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편집숍이에요.”라고 겸손하게 말하던 그들은 이제 자신 있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합니다

    나하나 - 브랜드 디자이너

    내 이름은 나하나 거꾸로 해도 나하나, 이름만으로도 브랜딩이 되는 분이네요. 브랜드 디자이너가 된 경유가 궁금해요. 원래 그래픽 작업을 하셨나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원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저와 잘 맞는 학과가 없어서 디자인과로 진학했어요. 학문적, 실무적으로 접하면서 그림보다 디자인이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디자인의 어떤 면이 더 잘 맞던가요?
    그림은 뭐랄까, 특정한 재능의 영역이라고 여겼어요. 주변에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주눅 들었던 것 같아요. ‘잘 그린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거죠. 그에 비해 디자인은 결과물도 빠르게 나오고, 의도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수작업에 대한 욕구가 있어서 취미로 그림을 그려요.

    그래픽 디자인을 배울 때는 브랜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요. 본격적으로 브랜딩을 의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브랜딩이 더 큰 범주에 있고, 그래픽은 브랜드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예요. 하지만 저 역시 학생 때는 로고 디자인이 곧 브랜딩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을 하면서 비로소 깨달았죠. 디자인은 기본이고 시야가 훨씬 넓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을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닌 브랜드 디자이너로 소개하고 있어요. 그게 저의 태도를 바꿔줄 것 같았거든요.

    그게 대략 3년 전쯤이더라고요. 축적해 온 것들이 정리가 된 시점이었나 봐요. 브랜딩 개념을 깨우친 전후의 작업 프로세스가 다른가요?
    예전에는 단순히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을 했어요. 대부분의 리서치가 시각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죠. 지금은 좀 더 브랜드적으로 접근해요. 아이덴티티는 기획에서 비롯되는 후작업이죠.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산업군이라 할지라도 우리와 같은 이념과 가치관을 지녔다면 깊게 디깅해요.

    그렇다면 시각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는 알아서 해결되는 점이 있겠네요.
    맞아요. 기획 단계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달까요. 예전에는 제가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고집했어요.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에 욕심을 부렸다면 지금은 아니에요. 오히려 브랜드에 저의 자아를 투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저의 것이 아니니까요.

    결과물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겠어요.
    예전 같았으면 시도하지 않았을 스타일도 지금은 거부감 없이 해봐요. 브랜드와 맞는 기획에 기반한 비주얼이라면 뭐가 돼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여전히 창작자로서의 자아가 고개를 들 텐데요.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면서 많이 보여주진 않으시더라고요.
    아직 보여줄 만큼 많이 그리고 있지 않기도 하고, 저의 스타일이 브랜딩 작업에 전혀 묻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느 정도는 취향과 관점이 담기죠. 그렇지 않고서야 저를 찾아올 이유가 없거든요. AI에 맡기면 되지.

    토스, 클래스 101, 모베러웍스 등 유수의 브랜드에 재직하셨어요. 독립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올해 연말까지 채우면 딱 2년이 돼요. 직장생활은 5년 정도 했는데 다닌 회사는 5~6개가 돼요. 친구들이 ‘프로 이직러’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제일 오래 다닌 곳은 BAT라는 에이전시로 1년 10개월, 클래스 101에는 3개월 있었네요.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도 아니었을 텐데, 계속 짧게 근속한 이유는 뭔가요?
    이직할 때마다 상황이 달랐어요. 신입으로 입사한 첫 회사에는 사수가 없었어요. 멤버들과 맨땅에 헤딩하면서 헤쳐 나가야 하는, 동아리 같은 분위기였죠. 사람들도 좋고 재미도 있었지만 저의 미래를 상상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오래도록 회사에 소속되어서 일하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어요. 연차를 채우기보다는 배울 점이 있고 저를 필요로 하는 조직을 찾아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계속 취직을 했네요.
    꾸준히 제안을 받았고, 좋은 선택지라고 판단되면 기회를 잡았어요. 다양한 조직을 빠르게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저의 일적 성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IT보다는 물성이 있는 분야를 더 선호한다든지, 호흡이 긴 작업은 힘들어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그 성향에는 클라이언트 워크가 제격이군요. 이제는 더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겠어요.
    조직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신 없는 일도 맡을 수밖에 없죠. 업무량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고요. 어떻게든 쳐내고, 앓아눕고, 밀린 휴가를 쓰는 패턴이 건강하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렇게는 오래 일할 수도 없고요.

    지금은 페이스 조절을 하시나요?
    이제 하려고 해요. 혼자 일하는 건 처음이라, 나름의 시스템을 찾는 데도 시간이 걸렸어요. 현실적으로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 약간 과호흡으로 달려온 것 같아요. 지난 1년 반 동안 두려움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거든요. 프리랜서란 불안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죠. 하지만 저의 상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불안은 아니기에 어떤 동력으로써 남겨놓아요.

    다양하게 경험하신 만큼 기준들도 생겼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브랜딩의 중요한 지점들이 있다면?
    아무리 얘기해도 부족하지 않은 건 바로 본질이에요. 가끔이지만 브랜드가 가진 힘이 너무 작으면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너 스스로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 뭔가에 휩쓸려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저는 오너의 마인드를 기반으로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고, 당연하지만 껍데기만 만들고 싶진 않아요. 최소한 브랜드를 좋아하거나, 그 일을 하고자 하는 타당성이 있어야 저도 몰입할 수 있어요. 그래서 브랜드의 진정성과 본질을 많이 보게 돼요.

    그런 본질을 찾기 위한 프로세스로는 뭐가 있나요?
    몇 가지 조건을 확인하고 계약을 완료하면, 인터뷰 세션을 가져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던져요. 브랜드적인 면, 사업적인 면, 사적인 취향이나 성향 같은 것도 묻고요. 저에게는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이에요. 대화를 나눔과 동시에 기획이 되죠.

    삭스타즈 인터뷰는 어땠어요?
    인터뷰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어요. 그냥 수다 떤 것 같아요. 성태민 대표님이 과거사까지 다 들려주시고 나서야 제가 이만하면 됐다고 마무리했네요. (웃음)

    대표님이 은근히 수다 떠는 걸 좋아하시죠. 그 인터뷰에서 뽑아낸 삭스타즈의 본질은 무엇이었나요?
    삭스타즈야말로 진정성으로 똘똘 뭉친 브랜드예요. 핵심 가치는 휴메인(humane)이었어요. 쉽게 말하면 ‘인간적'. 대표님이 겉으로는 무덤덤해 보여도 정이 엄청 많은 분이에요. 본인은 비관적이고 삶에 행복이 별로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누구보다 소소한 행복을 잘 찾아서 사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맞아요. 맛있는 음식, 아이와 보내는 주말 같은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분이죠.
    양말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소비를 해봤는데 그리 행복하지 않더래요. 그 감정이 의아해서 스스로 언제 행복한지 살펴보니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휴지를 쓸 때, 맛 좋은 고급 올리브 오일로 요리할 때 같은 순간들이었다는 거예요. 시계나 외제 차에 비하면 적은 비용이지만 훨씬 더 큰 행복을 주는 거죠. 삭스타즈 고객들도 대표님과 똑같다고 하시더라고요. 패션에 있어서 양말은 아주 작은 부분이고, 겉으로 대단하게 드러나지 않거든요.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자기만의 단단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 큰 꿈이나 큰 행복이 아니어도 작은 것에서 소중함을 발견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양말에서 ‘인간적'이라는 가치가 그렇게 도출되는군요. 그런 가치는 비주얼적으로 어떻게 해석되었어요?
    로고가 지나치게 럭셔리하거나, 반대로 너무 러프한 방향은 안 맞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굉장히 세심한 면이 있어서, 그런 성격을 중화시킬 느낌을 찾다 보니 수공예적인 요소가 들어가더라고요.

    장인 정신이군요.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죠. 그런데 왜 캐릭터를 차용했나요?
    대표님이 예전부터 동물 심볼을 만들고 싶었대요. 제안하신 동물로 수달, 다람쥐, 까마귀 등이 있었는데 다 뭔가 수집하는 애들이에요. 별것 아닌 도토리나 조개껍데기를 보물처럼 모으는 행위가 좋았대요. 삭스타즈에는 새가 잘 어울린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까치와 까마귀 중 고민하다가 까마귀로 결정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부정적인 심상으로 비치지만 그래서 더 좋았어요.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캐릭터는 너무 뻔하군요.
    네. 까마귀가 가진 심드렁한 무드가 필요했어요. 모두가 양말의 가치를 알아보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그려봐도 와닿지 않는 거예요. 왜 그런가 보니 다리였어요. 직물을 다루는 브랜드에 비해 새 다리가 너무 날카로웠던 거죠.

    그렇지 않아도 까뮤(삭스타즈 까마귀 심볼의 이름)가 양말을 신고 있어서 무척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자세를 그려봐도 이질감이 느껴져서 원초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직접 양말을 신어봤어요. 저는 바닥에 앉아서 신거든요. 까마귀도 저처럼 앉혀봤더니 너무 귀엽더라고요. 보통 새들은 그렇게 털썩 주저앉지 않잖아요. 그렇게 포즈를 정하고 드디어 구체화할 수 있었답니다.

    까뮤가 축하 모자를 쓰거나 홈페이지에 상담 아이콘으로 쓰이는 등의 응용이 재미있었어요.
    대표님이 디자이너 출신이어서 그런지 센스가 뛰어나요. 브랜딩 작업 자체는 저의 몫이지만 그 뒤에 유지 관리나 스토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건 오너의 책임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설정한 것들이 틀어지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죠. 반면 성태민 대표님은 몰입감이 대단하신 분이에요. 제가 짜드린 스토리나 슬로건을 반복해서 읽고 학습하시더라고요.

    도움을 받았을지언정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군요.
    그 태도가 무척 존경스러웠어요. 스스로 자기 브랜드의 성덕이라고 하시는 것도 너무 좋고, 그러니까 저도 덩달아 뭐라도 더 하고 싶어져요. 삭스타즈를 경험하면서 이게 진정한 브랜딩이라고 느꼈어요. 프로젝트 종료가 곧 브랜딩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때부터 진짜 시작이에요. 용어 자체에도 -ing가 들어가잖아요.

    디자인에도 트렌드가 있고, 그중 그래픽은 특히 빨라요. 예전에는 미니멀한 그래픽이 강세였다면, 지금은 한 개의 디자인에 들어가는 폰트나 컬러의 양 자체가 넓어졌어요. 일부러 어긋나게 만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편 브랜드의 가치는 그래픽 트렌드에 비해 변화가 훨씬 느리잖아요. 그 두 가지 흐름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나요?
    트렌드가 있는 것은 확실하고, 저도 인지하고 있어야 하기에 많이 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브랜드에 반영하진 않아요. 기획이 있기 때문이죠. 브랜딩이란 브랜드에 맞는 옷을 입혀주는 작업이에요. 그게 꼭 트렌디하라는 법은 없어요. 더불어 그동안 의도치 않게 리브랜딩 작업을 많이 했어요. 10년 넘어가는 브랜드들이기에 더욱 유행을 경계하시더라고요. 사람 성격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브랜드 역시 한결같은 면이 있고 지켜야 할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어요.

    갓 론칭하는 브랜드도 하나님을 찾아올 텐데요, 신규와 리브랜딩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데이터의 양 자체가 달라요. 신규 브랜드는 비즈니스적인 목표는 있지만 브랜드의 방향성이나 레퍼런스가 전무한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죠. 반면 리브랜딩 같은 경우, 방대한 데이터에서 뭘 숨기고 뭘 드러낼지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해요.

    데이터가 없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상상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겠네요. 데이터에 의지하는 것은 옳지만, 이미 존재하는 솔루션을 답습하는 위험성은 없나요?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이죠. 그래서 인터뷰할 때 오너가 추구하는 바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관찰하려고 노력해요. 또는 기존 서비스에 비해 당신의 브랜드가 가진 차별점이 뭐냐고 대놓고 물어보기도 해요. 답은 오너에게 있어요. 저는 그걸 뾰족하게 다듬는 역할이고요.

    신규 브랜딩과 리브랜딩, 어느 쪽이 더 어렵다고 느껴요?
    브랜딩은 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면 리브랜딩에 심적 부담이 더 따르죠. 내부 구성원들의 기대치가 높거든요. 이미 시도해 본 것도 많고요. 성태민 대표님도 그러셨어요. 그런 스타일 이미 해봤다고. 하지만 완료했을 때의 파급력은 더 커요. 고객들이 알아봐 주시거든요.

    하나님의 클라이언트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요. 저도 언젠가는 제 브랜드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아직 장르를 정하지 못했어요. 하나에 꽂혀서 디깅하는 면이 부족하거든요. 그런데 대표님들은 브랜드를 마치 자식처럼 키워요. 그만큼 투자도 많이 하시고요. 브랜드를 하려면 돈을 쓰는 것에도 두려움이 없어야겠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반복적으로 만나다 보니 자신감이 약간 떨어지기도 해요. 저렇게까지 열정적이어도 항상 부족하다고 하시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모를 때 시작해야 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시작했냐고 물으면 ‘그땐 몰랐다'라거나 ‘어찌어찌하다 보니'라고 대답하는 대표들이 적지 않거든요. 하지만 지금의 고민이 무색하도록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브랜드가 싹트는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서요. 삭스타즈와 또 기획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크리스마스 에디션을 함께 작업하기로 했어요. 브랜드 디자이너가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흔쾌히 수락했죠. 저 역시 까뮤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거든요. (웃음)

    꺄뮤가 어느새 하나님의 자식이 되기도 했네요. 요즘 자기 브랜드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우선은 좋아하는 일이어야 할 것 같아요. 나의 자원을 다 쏟아부을 수 있을 정도로. 그 다음, 브랜딩을 의뢰하실 계획이라면 브랜드 디자이너를 많이 찾아보시길 추천드려요. 대부분 포트폴리오로 1차 검증은 할 수 있어요. 자기 브랜드만의 기준을 세우고 컨택 해보세요. 그리고 의뢰하기로 했다면 전적으로 맡겨주시길 바라요. 오너의 철학이야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하지만 디자인에 있어서는 믿고 맡겨주실 때 결과가 더 좋습니다.

    원활한 작업을 위해 클라이언트와 작업자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의식하면 좋을 것이 있다면요?
    피드백에 관대해야 해요. 뭐가 좋으면 좋다, 별로면 별로다,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해결사 성향이 강해서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걸 좋아해요. 괜한 추측으로 감정 소모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요.

    본인이 진짜로 뭘 원하는지, 알기보다 모르기가 더 쉽죠.
    제안한 것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어요. 그건 괜찮은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는 아셔야 방향을 잡을 수 있거든요. 브랜딩에 있어서 그래픽은 되게 작은 부분일 수 있어요. 그렇기에 로고를 4차, 5차까지 끌고 가는 건 시간 낭비나 다름없죠. 그건 디자이너의 문제라기보다 사업의 방향성이 단단하지 않다는 신호예요.

    오히려 안에 깊숙이 빠져있을수록 객관화가 어렵거든요.
    맞아요. 자기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고, 엉뚱한 길로 가는 모습을 볼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다시 제자리로 꺼내 드리기도 해요. 하지만 저도 이제야 브랜딩이 뭔지 살짝 알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저보다 업력이 훨씬 오래된 분들이 앞에 앉아있으면 떨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왜 저에게 작업을 맡기냐고 여쭤봅니다. 일만 놓고 봤을 때는 저보다 잘하는 회사도 많잖아요.

    삭스타즈 대표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콤플렉스가 하나 있다면, 저의 아이덴티티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어요. 포트폴리오가 워낙 제각각이거든요. 그런데 성태민 대표님이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어요. 화법이 명확한 디자이너들에 비해 저는 삭스타즈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았대요. 솔직히 포트폴리오는 대표님 취향과 거리가 멀지만, 결과물을 보면 다 브랜드와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저의 오랜 고민이 해결되었어요.

    하나님의 정체성은 스타일로 국한되지 않는 거죠. 브랜드에 몰입하는 능력이 강할 뿐. 디자이너는 아티스트보다 문제 해결사에 가깝죠.
    맞아요. 저와 협업한 브랜드들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일이 끝나면 꼭 성공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그랬더니 성태민 대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포트폴리오 오래 쓰게 해드리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