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 난생 처음으로 반스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 어느 가정집 신발장에나 한 켤레씩은 있을 법한 반스를 그동안 한 번도 사 신지 않은 건 상술한 패션 철학 때문이었다. 사이즈가 넉넉한 편이라는 후기에 왕발이 될까 봐 두려웠고, 트렌드 염탐을 위해 종종 들여다보는 ‘무신사 스트릿 스냅’에 단골로 등장하는 신발이라는 점 또한 감점 요소였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알게 된 반스의 에코 띠어리 라인(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제품군)에 꽂혔다. 나름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신어 본 결과는 세상에, 발이 이렇게 편할 수가! 20년 묵은 발가락 통증이 사르르 풀리면서 발끝이 가벼워졌다. 말로만 듣던 ‘꽉끈’(신발 끈을 꽉 묶는 것)을 하니 걸음걸이에도 큰 지장이 없었다. 마침내 나는 20년 만에 발에 꼭 맞는 신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다.
넉넉한 신발을 신게 되면서 양말 취향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얇은 양말을 선호했다면, 요즘은 손으로 짠 듯한 두툼한 양말에 자주 손이 간다. 고백하건대 원래 두툼한 양말은 신발 안으로 쑤셔 넣기가 너무 힘들어서 한겨울에나 한 번씩 신을까 말까였다. 이 세상 모든 양말을 사랑하는 양말 박애주의자인 척했지만 실은 두께에 따라 양말을 편애하는 반쪽짜리 박애주의자였던 셈이다. 그간의 냉대를 사죄하는 심정으로 두툼한 양말을 이것저것 열심히 신어보는 중인 요즘 나의 최애 브랜드는 선더스럽(Thunders Love). “천둥의 사랑 있나요?”라는 문의 전화를 받고 한참 고민했다는 재인 매니저의 에피소드가 얹어져 내게는 사랑둥이(?) 이미지로 각인된 선더스럽 양말은 편안한 운동화에 매치했을 때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 발바닥에 닿는 폭신한 감촉과 발을 조이지 않는 느슨한 착용감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통기성이 좋아 오래 신어도 답답하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발 건강 지킴이가 따로 없다.
뭐니 뭐니 해도 두툼한 양말의 최고 매력은 봉긋한 실루엣이 아닐까. 특히 선더스럽 양말 가운데 애슬레틱(Athletic) 시리즈는 발목 부분이 벌키해서 신으면 정말 귀엽다. 푸퍼 재킷이 그 빵빵하고 귀여운 매력으로 FW 시즌 대세로 자리매김했듯이 선더스럽이 선보이는 두툼한 양말들도 볼륨감을 매력 포인트 삼아 승승장구하지 않을까. 올 가을에 신규 입고된 제품 중에서는 어반 콜렉션(Urban Collection)이 눈에 들어왔다. 다크 그레이 색상을 구입했는데 오동통한 실루엣에 시크한 색 조합이 마음에 쏙 든다. 내일은 ‘1업’한 살로몬 운동화에 폭신한 새 양말을 신고 출근길에 나서려 한다. 예전의 나처럼 얇은 양말만 편애하는 손님을 만난다면 도톰한 양말이 얼마나 진국인지 알려드려야지. 그렇게 양말 박애주의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