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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룬아의 인터뷰
    • 1유로의 작지만 찐-한 낭만: 리사르 이민섭 대표
    • EDIT BY 룬아 | 2023. 10. 31| VIEW : 1206

    1유로의 작지만 찐-한 낭만: 리사르커피 이민섭 대표 “에스프레소는 양이 많이 적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이런 추가 질문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적은 양에 대한 컴플레인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손바닥보다 작은 커피잔을 두어 개 쌓아놓고 뭔가 어른스러운 경험을 한 기분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진한 커피가 흘러내린 자국이 선명할수록 멋스럽고요. 에스프레소가 부담스럽다면 뽀얀 우유가 들어간 마끼아또, 코코아가 연상되는 피에노, 시원한 슬러시 같은 그라니따 등 친근한 선택지도 많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커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어서게 만든 카페. 커피를 맛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혼자 바를 찾도록 만든 곳. ‘에스프레소 바’라는 키워드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흐름의 선두에는 리사르커피가 있었습니다.

    스탠딩 바와 테리아(좌석)가 공존하는 리사르 청담점의 한 자리에 앉았어요. 여기는 테이블도 작습니다. 커피잔도 작고 대단히 부피를 차지하는 디저트도 없으니까요. 코코아 가루가 뿌려진 피에노 한 잔과 함께 밤톨만 한 쿠키를 접시에 담았습니다. 역시나 작은 스푼으로 커피와 크림이 잘 섞이게 젓고, 한 모금. 아. 짧은 만큼 강렬한 이 느낌을 길고 길게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일어요. 어쩔 수 없죠, 한 잔 더 시키는 수밖에.

    리사르커피 이민섭 대표



    커피가 정말 맛있어요. 그런데 원래는 영상 업계에서 라이징 스타였다고 들었는데요.
    모션 그래픽 등을 공부했는데 실제로 실력이 좋았어요. 안타깝게도 컴퓨터로 하는 일은 잘 안 맞더라고요. 당시에는 작업 환경도 열악했고요. 지금처럼 컴퓨터 사양이 높지 않으니 렌더링을 걸어놓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잦았어요. 너무 오래 걸리니까 한밤중을 이용하는 거죠. 그런데 아침에 보면 오류가 나 있는 경우가 있어요. 결국 새벽에 한 번씩 일어나서 확인해야 했죠. 방송 편집도 했었는데 사람이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임 UI 디자이너였다가 양말을 만들고 계신 삭스타즈 대표님과 비슷하네요. 컴퓨터 앞을 지키고 있는 게 고역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에 비해 커피는 피드백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겠어요.
    커피는 공사 현장이랑 비슷해요. 벽돌 하나만 잘못 놓아도 티가 나듯이 피드백이 바로바로 와요. 손님의 반응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고, 제작 과정에서도 빨리 수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일종의 가벼움이 있어요. 그 지점이 무척 매력적이더라고요. 몸으로 일하지만 머리도 써야 하고, 디자인 요소도 적용할 수 있고. 카페 비즈니스가 가진 입체성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국내 에스프레소 바의 포문을 열어주셨는데, 시장 자체가 없을 때 도전하기에 막연함은 없었나요?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안 하는 이유를 파헤쳐 보니 못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과일을 먹을 때 맛있다, 맛없다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처럼 커피 맛도 상당히 직관적이에요. 하지만 한국은 커피를 잘 몰라요. 거기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시작했고, 됐습니다.

    자부심이 느껴져요. 리사르의 에스프레소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저희 커피에 자신은 있지만, 아직 배울 게 많아요. 역사 깊은 브랜드들은 오랫동안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품질을 올리죠. 오래된 기업에는 그만의 엄청난 노하우가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 거기에 다다르지 못했어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커피 브랜드가 있나요?
    유일하게 동서식품이 있습니다. 주로 믹스커피를 드시지만 블랙커피가 갖고 있는 풍미의 퀄리티가 굉장한 편이에요. 그걸 대용량으로 만들어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제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영역이죠.

    리서치 차원에서 이탈리아도 자주 방문하시겠어요. 이탈리아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커피가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커피를 만들 준비,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준비. 그러니까 어딜 가도 세팅이 되어있죠. 맛을 아니까 그냥 되는 거예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요. 커피를 너무 고귀하게 대하는 것도, 천대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 자체인 거죠. 커피 그 자체.

    요즘 국내에도 에스프레소 바가 많이 생기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드셔보셨을 텐데, 어떤 피드백을 주고 싶은가요?
    맛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낮아요. ‘에스프레소 바'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을 뿐이죠. 사실 이탈리아에는 에스프레소 바라는 곳이 없어요. 그냥 ‘바'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대중에게 어필하려면 ‘에스프레소 바'라는 네이밍이 필요한 거예요. 리사르는 한 번도 스스로 그렇게 불러본 적이 없어요. 그냥 리사르커피라고 합니다.

    커피 그 자체니까.
    맛 좋은 에스프레소를 팔 뿐이죠.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참 빨라요. 뭔가 새로운 게 나타났다 싶으면 금방 캐치하죠. 에스프레소 잔을 쌓아놓고 인증샷을 올리는 유행도 한참 돌았었는데요, 그런 재미로 입문한 사람들이 많지만 에스프레소 자체를 느끼고자 하는 수는 아직 적을 것 같아요.
    방문객의 대략 20% 정도입니다.

    그럴수록 에스프레소 첫 경험은 너무 중요할 텐데요. 그 순간을 어떻게 설계하고 계신가요?
    일단 직원들이 바리스타를 넘어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해야 해요. 우리가 원하는 건 좋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커피의 편차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100잔 중 80잔 이상은 좋게 나와야죠.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테스트하는 세션을 가져요. 직원들이 능동적인 태도를 가지려면 스스로 평가하고 컨펌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거든요. 거기에 상호작용이 더해져야 하고요. 그게 불편하다면 양 많고 저렴한 커피로 가시면 됩니다.

    모든 답은 근본으로 돌아가는군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주는 것도 그 첫 경험을 의식한 건가요?
    그런 면이 있죠. 아직은 고객들이 응용해서 먹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넣어드리고 있어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실 수 있거든요.

    평양냉면에 식초와 겨자를 넣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군요.
    그게 마치 원재료를 훼손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잖아요. 하지만 각자의 입맛과 취향대로 자유롭고 다양하게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평양냉면집에 식초와 겨자가 구비되어 있다는 건 활용해도 된다는 뜻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간장을 넣는 걸 좋아합니다. 리사르에도 설탕과 계핏가루를 비치해놓았지만 에스프레소 정도는 권장하는 대로 드셔보셨으면 해서 설탕을 넣어드려요.

    설탕 한 스푼으로 훨씬 기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죠. 이탈리아에서도 설탕이 기본으로 들어가나요?
    원래는 들어가지 않지만 단골들에게는 미리 넣어주기도 해요. 이걸 ‘비포 서비스'라고 불러요. 물론 원치 않는다면 간단히 빼달라고 요청하시면 되고요. 에스프레소만 마셔야 커피의 순수한 맛을 즐길 줄 안다고 생각하지만, 커피는 이미 비상식적인 식품이에요. 열매를 따서 씨앗만 뺀 것을 볶고 갈아서 우려내잖아요. 그 과정에 100% 순수한 맛이라는 개념이 성립되는지 모르겠네요.

    리사르에 디카페인 메뉴는 없나요? 올해 위장병으로 고생을 조금 했거든요.
    할 수 있지만 안 합니다. 저는 속이 안 좋으면 커피를 안 마셔요. 어차피 카페인을 완전히 제거하는 공법은 없어요. 독특한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그게 인간에게 건강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이미 비상식적인 식품을 더 비상식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생각해 보니 핵심을 뽑아내는 행위네요.
    그렇죠. 그리고 에스프레소의 카페인 함유량은 아주 적어요. 하루 권장량의 1/10 정도 될 거예요. 유럽 사람들이 하루에 대여섯 잔씩 마실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에요. 카페인을 떠나서 한 번에 에스프레소 한 잔의 양이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사이즈에서 전해지는 탁월함, 더 나아가서는 사치까지 담겨 있거든요.

    1,500원(리사르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의 사치라는 개념이 무척 마음에 드네요. 출근 전이나 점심 식사 후에 리사르에 들러서 맛있는 커피 한 모금 들이켜면 오후 내내 책상에서 커피를 물고 있을 이유가 없어지는 거예요.
    무슨 맛인지도 모를 음료에 젖어있을 필요가 없어요.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세뇌 작용만 남는 거예요. 리사르에서는 적은 돈으로 품격을 누릴 수 있어요. 더 나은 커피를 만드는 건 저희의 미션이고, 그 결과가 손님들에게 훌륭한 감각으로 돌아가죠.

    커피를 습관적으로 먹어왔네요. 한편 리사르에서는 커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이런 거 아는 사람’이라는 약간의 자부심도 느끼고.
    많이들 그렇게 느끼세요. 그걸 더 많이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설렘을 선사하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게 리사르에서는 1,500원에 가능하죠.

    좋은 커피 이상의 경험을 얻어가는 곳입니다. 리사르에 처음 온 손님이 딱 한 잔만 마셔야 한다면, 무엇을 추천하실 건가요?
    피에노. 크림이 들어가서 부드럽고 달콤해요. 에스프레소에 입문하기에 가장 적합한 커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에스프레소 잔에 나온다는 점, 크림이 들어갔지만 에스프레소를 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 그게 중요해요.



    약수에서 작게 시작하셨는데 2호점을 청담으로, 또 3호점을 명동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그 전에 왕십리에서 카페를 운영했었어요. 에스프레소 전문점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공간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소개받은 곳이 현재 약수점입니다. 되게 작고 스탠딩 온리죠. 그래서 혼자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시작부터 매출은 좋았어요. 이전 카페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주시기도 했고,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눈에 든 효과도 톡톡히 봤죠. 2호점에 대한 욕심은 항상 있었고, 테리아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현재 청담점 인테리어를 맡아주신 아뜰리에앤프로젝트 팀과 연이 닿아서 들어오게 되었어요.

    기존의 카페 문화와 절충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손님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앉아서 즐기는 것도 좋잖아요. 저조차도 카페에 앉아있는 걸 좋아하는걸요. 리사르를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는 충분히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메리카노가 생겼나요? 그동안 없었는데 조금 놀랐어요.
    네. 리사르 스타일의 아메리카노가 궁금할 수 있고, 리사르를 잘 몰라도 지나가다가 들어오는 분들에게는 반가울 수 있죠. 생각보다 너무 안 팔리긴 해요 (웃음). 로스가 많습니다.

    리사르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올 일이 많지는 않으니까요. 원두가 다른가 보네요, 로스가 있다는 말씀은.
    아메리카노에는 과일 향이 살짝 나면서 아주 시큼하지 않은, 스페셜티 커피 느낌을 담으려고 해요. 우리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리사르 느낌으로 일반적인 아메리카노보다 작은 잔에 나가고 있습니다.

    청담점은 한적한 거주지에 있어요.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많을 거고요. 명동이라는 지역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요.
    명동은 그야말로 명동이니까 선택했지만, 그 안에서도 리사르는 굉장히 고즈넉한 곳에 서 있어요. 명동 메인거리 양옆에 가게들이 많은데, 코앞까지 가야만 어떤 매장인지 알 수 있어요. 반면 리사르는 걷다 보면 멀리서도 파사드가 보이죠. 그 느낌이 좋게 다가온 것 같아요.

    3호점까지 확장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만족하실 만큼 성장했나요?
    저는 부를 추구하는 유형은 아니고, 삶의 의미를 축적하고 있어요. 해보고 나서 깨달은 거지만, 확장이 곧 경제적 성장은 아닙니다. 확장이란 인건비 등 고정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일이거든요. 더불어 직원들의 삶이 엮여 있기 때문에, 매사에 신중하게 되고요. 규모의 사업을 할 수 있는 인물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욕심으로 채우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으시네요 (웃음). 그럼 당분간 확장은 없나요?
    규모보다는 경험 측면에서 준비하고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종로예요. 광화문 디타워 근처인데, 좌석은 없고 스탠딩으로 회전율이 높은 곳이 될 것 같아요. 청담이나 명동에서 공간에 대한 필살기를 보여드렸다면 종로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본격화되는 매장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대표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그림일 수 있겠어요.
    에스프레소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담기겠죠. 리사르의 이야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백화점을 예로 들면 수백 개의 매장이 모여 있잖아요. 그래서 유동 인구가 많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되기보다는 수익이 덜하더라도 유일한 존재가 되는 쪽을 지향해요. 그게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에요. 매출이 아닌 가치.

    그렇게 가치 중심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가치는 바뀌지 않아요. 바뀌지 않는 걸 붙잡고 가는 거죠.

    오래 하고 싶으시군요.
    맞습니다. 요즘에는 그만하고 싶어요 (웃음). 리사르는 계속 살아있어야 해요. 직원이 퇴사하는 등 조직에 변화는 항상 있지만, 그래도 계속 순환하면서 누군가 또 와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기업적인 자세라고 생각해요. 부를 축적해서 차를 사고 집을 사고 하는 것보다, 언제든지 일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좋아요. 어차피 계속 일하면서 살 거니까.



    흥미롭다고 생각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데 그 동네에 어울리는 맛이었다고 하셨거든요. 분위기마다 맞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소렌토였어요. 선선한 바람이 불고,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데 건축물은 은은한 색감을 띠어요. 그리고 커피를 내려주시는 백발의 할아버지. 완벽한 맛이었죠.

    그럼 서울에 어울리는 맛도 있겠네요.
    그게 저희 커피라고 생각합니다.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너무 쓰지 않아요. 지나치게 도시적이지 않고, 산뜻한 느낌도 머금고 있죠. 하이브리드예요.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어떻게 보면 베이직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약수와 명동은 그렇고 청담은 조금 달라요. 여유로운 동네고 매장에 햇살도 많이 들어와요. 이탈리아 남부 지방을 상상하면서 여행의 느낌을 살짝 담았어요.

    정말 디테일하네요. 어떤 면에서는 비효율적이지만 그 정성이 전하는 진심이 있죠. 단골분들은 그 차이를 느끼시나요?
    네, 그리고 맛이 이상하다고 해요. 평소에 즐겨 마시던 리사르 커피가 아닌 거죠.

    그럼에도 밀고 나간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에스프레소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크레마가 풍부하고 색이 진해야 해요. 그리고 우아하고 근사한 향이 나죠.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어볼까요. 바이올린 하나와 바이올린 열 개의 연주는 당연히 다르죠. 웅장함에서부터 차이가 나요. 그런 극대화된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 커피 향.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감각적인 기준이네요. 커피 얘기에 빠져있다 보니 삭스타즈 인터뷰라는 사실을 잊을 뻔했어요 (웃음). 양말을 만든다고요.
    삭스타즈 대표님께서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윗집과 아랫집 이웃으로 지내면서 저도, 직원들도 서로 친밀하게 지내고 있거든요. 브랜드의 성향이나 철학적인 면에서도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먼저 바리스타 양말을 만들자고 하시더라고요.

    바리스타 양말이라고 해서 특별한 기능이 있는 줄 알았어요.
    스포츠 양말과 비슷할 거예요. 서서 일하는 시간이 많으니 쿠션감이 중요하고 통풍이 잘돼야 해요. 땀이 많이 나는데, 발가락 양말도 좋겠네요.

    이왕 만드는 거, 희망하시는 디자인이 있나요?
    매장을 보면 아시겠지만 골드와 브라운, 즉 웜톤 느낌이 강해요. 커피의 감각이죠. 그리고 리사르의 상징인 늑대가 들어가는 것도 귀여울 것 같아요.

    늑대가 리사르에게 중요한 의미더라고요.
    늑대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팀으로 움직여요. 희생정신도 있고요. 한 멤버가 자기 역할을 담당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다른 늑대가 대신 맡아주기도 해요. 리사르는 저 혼자 시작했지만 공동체가 되었어요. 저희는 처음부터 기부 활동을 이어왔어요. 단돈 만 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200배가 되었죠. 그걸 늘려가는 게 목표예요. 이 사회 또한 공동체이고, 늑대는 우리가 가진 사회적인 비전을 표현해 주는 심볼이에요.

    후원금의 증가는 곧 리사르의 성장을 보여주는 징표네요.
    후원하기에 성장하는 거예요. 성장하기 때문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죠. 그런 의식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에스프레소라는 핵심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제야 리사르를 알게 된 사람들도 있지만 11년 전에 시작했다고 해서 놀랐어요. 포텐이 터진다는 느낌을 몇 년 전부터 받으셨을 것 같아요.
    3년 전에 청담점을 오픈하자마자 너무 잘 됐어요. 내 인생의 정점이라고 착각할 정도였죠. 하지만 역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더라고요. 코로나가 풀리고 해외로 소비가 돌기 시작하면서 카페에도 타격이 있었어요.

    가격을 조금 올릴 수는 없나요? 500원만 올려도 운영 면에서는 차이가 클 텐데요.
    드시고 계시는 피에노가 3,000원이에요. 결코 싸다고 할 수 없죠. 다만 에스프레소만큼은 1,500원의 기쁨을 해치고 싶지 않아요.

    일종의 시그니처 경험이군요.
    기본 에스프레소는 유지하지만 나머지 메뉴의 가격은 올릴 필요가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스탠딩과 테리아의 가격 차이를 뒀어요. 테리아 에스프레소가 4,500원이었죠. 하지만 이번 가을부터 서비스도, 가격 차이도 없앴습니다. 고민의 지점은 바로 서비스 그 자체였어요. 직원들이 호텔에서 일해본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레벨 이상으로 올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디저트도 대폭 줄이고 간단한 쿠키류만 남겼어요.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고, 우리에게 안 맞는 옷을 입고 끙끙대기보다 가장 잘할 수 있는 형태를 선택한 겁니다.

    요즘 카페들은 점점 키오스크로 바뀌는데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빙하는 테이블 서비스가 신기하긴 했어요. 서비스의 양극화를 시도했다가 평균치를 맞추는 쪽으로 돌아오셨네요.
    사실 테이블 서비스는 객단가를 높이기 위함이었어요. 키오스크가 들어가는 건 커피를 저렴하게 팔기 위해서인데, 저희는 그 반대를 해본 거죠. 추가로 바뀐 게 있다면, 서비스가 없어진 대신 손님들은 테이블에 앉아서도 커피를 한 잔 더 마실 수 있게 됐어요. 이전에는 에스프레소 두 잔에 9,000원이 발생했다면 지금은 더 비싼 피에노를 두 잔 마셔도 6,000원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매출은 비슷합니다.

    운영 면에서 봤을 때는 플러스죠. 직원들의 시간과 에너지도 모두 아끼게 되었잖아요.
    맞아요. 업무량이 좀 줄었고, 덕분에 전문성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시스템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혼자 경영하는 입장이다 보니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덕분에 리사르가 더욱 리사르다워질 수 있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했다고 느끼는 모먼트가 있었을 텐데, 그때마다 어떤 패턴 같은 것이 있었나요?
    도전은 성장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도전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정체성과 지향점에 연결되어 있잖아요. 청담점을 오픈했을 때도 그랬고, 지금은 캡슐커피를 자체적으로 제작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기존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면서 우리만의 콘텐츠를 보유하게 되죠.

    캡슐커피가 의외이긴 했어요. 보통 캡슐은 간단히 때우기 위해서 소비하는데, 리사르의 에스프레소는 그런 느낌은 아니거든요.
    최선을 만드는 거예요. 직접 와서 드시는 것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걸로도 리사르의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도록. 구매를 후회할 정도의 퀄리티는 아닙니다.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드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 가치가 공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반짝거리고 녹진한 것을 지키면서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제 곤조를 약간 내려놓는 일입니다. 고민은 많이 하죠. 아메리카노가 특히 그랬고요. 직원들도 의아해했지만 핵심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에스프레소는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리사르의 느낌이네요.
    네.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느낌. 그걸 전달하는 게 포인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