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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룬아의 인터뷰
    • 발등 위의 완벽한 세계: 세컨드 팔레트
    • EDIT BY 룬아 | 2023. 12. 1| VIEW : 14992

    발등 위의 완벽한 세계: 세컨드 팔레트 수년 전, 한남동의 의류 편집숍 페르마타에서 생소한 양말 한 켤레를 마주했습니다. 시스루 바탕에 단색 도트와 스트라이프가 고루 섞여 있는 디자인이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양쪽의 패턴이 달랐어요. 그 미묘하고 세심한 디테일에 홀려서 블랙과 화이트 한 켤레씩 사 들고 귀가했습니다.
    호기심을 못 참고 바로 착용해 보았어요. 다소 빳빳한 소재의 시스루는 그동안 신어본 양말들과는 확연히 달랐어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가슬가슬한 텍스처 덕분에 발목에 달라붙지 않아, 샤스커트를 발에 입은 느낌이었달까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역시 비슷한지, 후에 이 양말로 발레리나 화보를 찍기도 했습니다. 은은하면서도 풍성하게 살아나는 디테일에 반해서 색상별로 한 켤레씩 더 주문했어요. 이런 양말이 흔치 않았던 당시, 쟁여두지 않으면 다시는 구매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게다가 국내 브랜드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국내 입점처는 세 군데에 불과하면서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세컨드 팔레트. 해외 브랜드로 오해하기 딱이죠? 인터뷰 자료마저 전무해서 어딘가 신비로운 뉘앙스를 자아내기도 했는데요, 망원동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들은 그저 친근하고 겸손한 디자이너였습니다. 양말을 연구하고 만들고 아끼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을 뿐이었어요. 수공예 작가가 작품 하나하나 자식처럼 보듬고 어루만지듯 양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보고 왔습니다.

    세컨드 팔레트 전지혜, 전원준

    안녕하세요, 드디어 뵙네요. 도트 양말의 창조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컨드 팔레트는 둘이 운영하는 작은 양말 브랜드예요. 패션 디자이너였던 지혜 님과 주얼리 디자이너였던 원준 님이 2015년에 함께 론칭했습니다.

    부부시라고요.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업까지 이어진 건가요?
    원준 - 결혼은 20년 전에 했어요. 결혼 후 함께 유학을 다녀와서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다가 한계에 다다랐어요. 둘이 새로운 걸 해보자, 타인과 너무 섞이지 않고 핑퐁핑퐁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 끝에 양말이 떠올랐어요.
    지혜 - 양말에 얽힌 좋은 추억도 있었어요. 출장차 들른 뉴욕에서 알록달록한 양말을 사 왔는데 중요한 날이면 꺼내 신게 되더라고요. 일종의 징크스처럼요. 우리도 그런 걸 만들어 보자, 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원준 - 국내에서는 양말이 패션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가까스로 피어나기 시작하던 시기였어요. 그전까지는 생필품에 가까운 품목이었죠.

    패션 디자이너의 경력이 큰 도움이 되었겠어요.
    지혜 - 10년 넘게 일했으니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혀 다른 영역이더라고요. 신입사원이 된 기분이었죠. 공장들을 전부 발품 팔면서 사장님들께 사정하고, 부탁드리고 그랬어요.

    멀리서는 비슷해 보이는 일도 깊이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이 숨어있죠. 한편 원준 님이 주얼리 디자인하셨던 느낌도 양말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양말을 보면 작은 옷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세컨드 팔레트의 양말에서는 보석의 뉘앙스가 느껴지거든요. 두 분이 디자인을 같이 하시나요?
    원준 - 잘 봐주셔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고, 실제로 주얼리를 의식하고 만들진 않아요. 실질적인 디자인은 지혜 님이 전담하는데, 출발은 함께 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죠. 요즘 무슨 생각해? 어떤 색이 좋아? 같은 캐주얼한 대화에서 점점 아이디어를 좁혀 나가요.
    지혜 - 컬렉션 콘셉트를 잡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작업물을 한데 모아놓고 얽히는 느낌을 찾아서 하나로 묶기도 해요. 그러면 누락시키거나 추가해야 할 부분이 보이죠. 방식을 정해놓고 작업하진 않아요.

    세컨드 팔레트의 디자인이 결코 평범하지 않아요.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고객들은 물론이고, 반대로 되게 수수하면서 작은 것에 끌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아요.
    원준 - 맞습니다. 사실 저도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이런 양말을 본격적으로 접해봤어요. 저 자체가 평범한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양말의 매력인 것 같아요. 작지만 디테일하게 착용자의 센스를 드러내 주죠.
    지혜 - 누군가의 양말 서랍이 저희 양말로 빼곡히 차있는 걸 원하지 않아요. 작은 비중을 차지하더라도, 특별한 날 선택하는 그런 양말이 되기를 원해요.

    도트 양말이 저에게 한동안 그런 양말이었어요. 이제 보니 세컨드 팔레트의 스테디셀러가 되었더라고요.
    지혜 - 2019년에 출시한 제품이에요. 원칙적으로는 재생산을 하지 않아요. 스테디셀러가 있을 수 없는 시스템인데 바이어들이 그 디자인을 계속 찾더라고요. 끊임없이 주문이 들어와서 이상하다고 여겨질 정도였어요. 지금은 디자인이 등록된 상태입니다.
    원준 - 디자인 자체는 론칭할 때부터 있었어요. 가장 대중적인 양말이라면 도트와 스트라이프 패턴이잖아요. 그 두 가지를 섞되, 우리만의 느낌으로 만들었죠. 그때는 시스루가 아니라 면이었는데, 유독 인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라인업 중 시스루의 비중이 꽤 높아 보여요.
    원준 - 양말은 계절을 타요. 여름은 대표적인 비수기죠. 그 지점을 극복해 보고자 시스루에 도전했는데, 충격적일 만큼 반응이 없었어요. 바이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예요. 국내에서는 생산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일본까지 들고 가서 만들어 온 거였거든요. 일본에서도 하지 않는 걸 저희가 자신 있다고 설득해서 생산했는데 그야말로 실패였습니다. 그래도 계속했어요. 두 시즌 정도 지나고 나니 반응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여름에만 진행하려고 했는데 유럽에서는 사계절 내내 수요가 있어요. 한겨울에 커다란 코트와 머플러를 걸치고서 양말은 얇고 짧은 걸 신고 다녀요. 긴 양말을 잘 안 신는대요. 그래서 1년 내내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확신을 갖고 인내하는 시기는 누구나 필요하군요. 시스루를 진행하면서 비수기가 없어졌나요?
    원준 - 상당히 해소되었죠. 브랜드 초기에는 발목 양말도 만들었었어요. 판매는 잘 됐는데, 세컨드 팔레트는 시각적인 장점이 큰 브랜드잖아요. 하지만 발목 양말은 신발에 몽땅 가려지죠. 그게 아쉬워서 품목 자체를 없애고 다른 루트를 선택한 것이 시스루가 된 거예요.

    여름에 샌들에 매칭하기도 너무 좋아요. 샌들 + 양말 시대가 열리기도 했잖아요. 선견지명이 있었네요.
    원준 -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디자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모든 양말 디자인이 짝짝이더라고요. 그리고 양쪽 디자인 차이가 꽤 많이 나요.
    원준 - 처음에는 더 특이했어요. 하고 싶은 걸 다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시장성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정말 순수했죠. 지금은 고객들의 취향도 의식하면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지혜 - 론칭을 준비하는데 양말에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좁더라고요.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한쪽에 담고 나면 끝인 거예요. 게다가 양말 윗면을 중심으로 세팅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제약도 많죠.

    그러고 보니 일반적인 발 모양이 아니라 납작해요. 이렇게 세팅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지혜 - 양말을 신고 내려다보면 제일 잘 보이는 부분이 윗면이잖아요. 세컨드 팔레트는 신는 사람이 중요해요. 남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나의 시선이 우선이죠. 그래서 윗면을 중점적으로 디자인하는데, 아무래도 평면적이다 보니 아쉬움이 남아서 두 짝이 세트가 되었을 때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도록 했어요.

    양말 같은 아이템을 논할 때 ‘나만 아는 기쁨, 나를 위한 행복’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풀어낸 브랜드는 처음이에요. 정말 자기애가 강한 브랜드군요. 역시나 아티스트 느낌이 물씬 나는데, 타협하지 않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지혜 - 일단 저 세팅을 공장들이 싫어합니다. 보편적인 형태가 아니니까요. 물론 짝짝이도 싫어하시고요. 또 가을/겨울 양말들은 텀블(tumble) 공정을 거쳐요. 보통 양말을 세탁하면 약간 줄어드는데, 일부러 조금 크게 짜서 한번 돌리는 거죠. 그러면 내구성이 높아지고 착용감도 좋아져요. 하지만 그 공정을 거치면 불량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디자인이 짝짝이다 보니 두 배의 수고가 따르죠. 그렇다고 사장님들이 기피하시는 걸 다 포기하면 세컨드 팔레트의 존재 가치가 사라져요. 그래서 여전히 자주 다툽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성이 넘쳐서 양말을 다시 보게 돼요.
    원준 - 검품도 직접 합니다 (웃음). 보통 의류는 검품소에 맡기는데 양말은 안 해주더라고요. 저희는 외국 바이어가 많아서 물건이 잘못 가면 일이 커져요. 그래서 직접 하는 게 오히려 효율적인 선택이었어요. 사실 디자인 작업 같은 건 어려운 부분이 아니에요. 품질 관리가 제일 힘들죠. 특히 초기에 공장이 안정화가 안 된 상태라면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어야 해요.



    일본에서도 생산하고 계신다고요. 그래서인지 일본 입점처가 정말 많더라고요. 일본 브랜드로 알고 있는 고객들도 많을 것 같아요.
    원준 - 국내 100%로 시작했는데 시스루를 하면서 일본으로 넘어갔어요. 현재 일본 60%, 국내 40% 정도 됩니다.
    지혜 - 처음부터 해외를 목표로 했어요. 해외에는 이미 패션 양말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쪽에서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죠. 일하면서 해외 전시도 10년 넘게 다녀봤으니 어깨 너머 쌓은 경험도 있었고요. 론칭하고 1년 후에 바로 일본에 진출했어요.
    원준 -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지만 한국 브랜드라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도 않았어요. 국적으로 특정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싶진 않았거든요. 다만 한국, 일본 생산이라는 점은 해외에서 큰 신뢰 포인트로 작용해요. 일단 믿고 본다고 할까요.

    그렇게 유럽이며 미국이며 해외 페어를 계속 다니신 거군요. 그야말로 발로 뛰는 마케팅과 영업이네요.
    원준 - 맞습니다. 아는 방법이 그것뿐이라서요. 그나마 미국 바이어들은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유럽 바이어들은 여전히 직접 보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일해요. 스페인에 메인 클라이언트가 있는데 화면으로 고르기 힘들다고 불평하더라고요.

    문화와 방식이 이렇게나 가지각색입니다. 지역에 따라 전시 구성을 바꾸기도 하나요?
    지혜 - 차이가 있죠. 특히 유럽은 좀 장식적이라서 생화를 사용한 적도 있어요. 부스를 꾸미고 양말에 꽂기도 했는데 확실히 풍미가 있더라고요. 파리 메종 오브제 같은 경우는 부스 디자인도 컨펌받아야 해요. 잔소리를 듣기도 한답니다.

    파리지앵은 파리지앵이네요 (웃음). 말씀을 들어보니 실질적인 경험치가 중요하겠어요.
    지혜 - 아무리 유명한 페어라고 해도 내 브랜드와 잘 맞아야 해요. 그래야 정확한 바이어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해외 페어에 진출하기 전에 참가자의 시선으로 다녀보시는 걸 추천해요. 그렇다 해도 매년 분위기가 다르고 변수가 많아서 적중하기 쉽진 않지만요.

    메종 오브제는 리빙이 강세인데, 그전까지는 패션 전시 위주로 참가하셨죠? 패션과 리빙 페어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지혜 - 예산 규모부터 다르더라고요. 리빙이 훨씬 커요. 예전에는 패션이 강했어요. 그런데 트렌드가 라이프스타일 위주로 옮겨가고, 편집숍들도 리빙과 통합하면서 패션 전시들이 많이 축소되었어요. 메종 오브제는 패션 액세서리 카테고리로 참가했는데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이에요. 작게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으니 점점 커지더라고요.

    역시 선견지명이 있으십니다.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직관이 좋은 것 같아요.
    원준 - 위기의식인 것 같아요.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한 가지 독특하다고 느낀 지점이 있었는데, 박물관에 입점이 많이 되어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박물관에서 양말을 파는 걸 거의 보지 못했어요.
    원준 - 웹사이트에서 stockist 리스트에 박물관만 따로 분리해서 제일 위에 배치하긴 했어요 (웃음). 해외 전시에는 박물관 아트숍 바이어들도 많이 와요. 네덜란드 뮤지엄에서 댄스를 주제로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시스루 양말을 선택하기도 했었고, 작년부터는 샌프란시스코 모마에서 판매를 개시했어요.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신자 선생님의 [실로 그리다] 전시 콜라보 제안을 주셨어요. 큐레이터님이 작품 그대로 양말에 옮기려고 했는데 저희 제품을 보고는 디자인을 맡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 영광스럽게도 세컨드 팔레트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양말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패션과 리빙, 아트씬을 넘나드는데 화보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는 양말 자체가 잘 드러나게 찍잖아요. 세컨드 팔레트의 화보에서도 양말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미장센이 독보적이라고 할까요.
    지혜 - 디자인과 품질은 기본이고 그 외에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화보예요. 비주얼은 브랜드를 설명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죠.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저희가 말주변이 없는 점도 작용하지만,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원준 - 양말만 보여주는 룩북에는 재미를 못 느꼈어요. 더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예산이 없어서 둘이 찍었어요. 코엑스에서도 찍고 (웃음). 하지만 금세 한계를 느끼고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무리해서 투자하고 있어요 (웃음).
    지혜 - 우리 회사에 마케팅 예산이 있다면 촬영과 해외 전시에 다 씁니다.



    국내 입점처는 단 세 곳이에요. 삭스타즈, 페르마타, 라마홈. 특별히 선별하시나요?
    원준 -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동안 많은 거래처를 거쳐왔어요. 굳이 선별하는 영역이 있다면 온라인이에요. 제안은 많이 들어오지만, 온라인 유통 특성상 가격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요. 쿠폰이나 세일로 홍보하지 않으면 어렵거든요. 세일 행사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괴로워서 정중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삭스타즈에서도 세일을 안 하시죠.
    원준 - 저희의 입장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하죠. 노세일 브랜드를 지키는 게 쉽지는 않아요. 특히 초반에는 힘들었어요. 매출과 직결되니까요. 그래도 꿋꿋이 지켜냈더니 이제는 고객님들도 함께 해주고 계세요. 오히려 세일이 없으니 아무 때나 편하게 쇼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지혜 -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제가 재무를 담당하고 있거든요 (웃음). 하지만 저희가 만든 양말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그 마음으로 지켰다고 생각해요. 신기하게도 한참 지난 시즌 제품을 아직도 구매하는 분들이 있어요.

    제조업의 딜레마, 재고를 떨어야겠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되었네요.
    원준 - 애초에 생산량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시즌 초반에 유독 빠르게 팔리는 상품 외에는 리오더를 진행하지 않아요. 품절되면 없어요. 의도치 않게 리미티드 에디션이 되었네요.

    원한다면 빨리 사야겠네요. 브랜드가 안정화되면서 자신감도 커진 느낌이 드는데요. 특히 타이즈를 보고 놀랐어요. 이렇게 과감할 수 있다고요?
    지혜 - 타이즈는 면적이 넓고 양쪽 컬러가 다르게 들어가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 같아요. 특히 울 소재에 패턴이 크게 들어간 제품은 시중에 거의 없어요.

    없는 건 없는 이유가 있다고도 하는데요.
    원준 - 맞아요. 그래서 타이즈 만들 때 너무 힘들었어요. 공장 자체가 없었거든요. 생산만 3년이 걸렸어요. 하지만 저희는 양말을 넘어 레그웨어 브랜드로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그 출발점으로 타이즈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희소성이 어마어마해요. 마치 ‘내가 이 구역의 타이즈 왕이다' 같은 느낌.
    원준 - 그런 재미도 있었어요. 이건 우리만 하는 거다.

    분명히 도전이었을 텐데요. 실제 판매는 어땠나요?
    원준 - 욕심을 한껏 담은 아이템이어서 제품은 만족스럽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판매가예요. 국내에서 9만 8천 원이면 장벽이 높은 가격이거든요.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서 더 낮추기는 어려웠어요. 그래도 생각보다 찾는 분들이 있어요. 특히 일본, 홍콩, 대만에서 인기가 많아요. 대만에서는 한여름에도 양말을 많이 신어요. 그리고 일본 문화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갖고 있어요.

    저도 삭스타즈에서 5만 원, 8만 원대 타이즈를 사서 신고 있는데 심지어 단색이에요. 그런 아이템들과 어우러져 있으니 타깃 고객들은 충분히 이해하실 거예요.
    지혜 - 맞아요. 아는 분들은 다 사시더라고요. 판매를 늘리거나 고객층을 넓히기 위한 방안으로 타협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년이면 10년 차 브랜드가 되네요. 지난 시간 동안 변해왔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나요?
    원준 - 매일이 같아요. 매번 힘들고요.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어찌 이렇게 힘든지요 (웃음). 특히 코로나 때 무척 아쉬웠어요. 2020년 1월 메종 오브제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파리의 주요 박물관들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오더까지 들어왔다가 엎어졌어요. 저희는 꿈을 이뤘다고 한껏 들떠있었는데 말이죠. 매일을 숱하게 반복하며 10년을 쌓아왔을 뿐, 뭐가 대단히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혜 - 10년을 해도 예측불가능한 시장이에요. 지난 시즌에 잘 됐다고 비슷한 걸 내놓으면 잘 안 팔려요. 의외로 예상 못 한 아이템이 터지기도 하고요. 노하우가 생길 수가 없어요. 변화가 심해서, 데이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죠. 요즘 양말 브랜드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니팅에 대한 노하우가 있으니 목도리나 장갑 등으로 아이템을 확장하더라고요. 세컨드 팔레트는 확장의 계획은 없나요?
    원준 - 아직 양말에서도 완벽하지 않은데 그런 것까지 어떻게 하나 싶어요. 일단 레그웨어부터 제대로 해놓고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두 분 성격은 다른데 어떤 기준치가 상당히 닮았어요. 어지간한 고집이 아니에요.
    원준 -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아직은 저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경쟁하고 싶어요.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알맞은 때가 올 거예요. 또 한 번 위기의식을 느낄 수도 있고요 (웃음).

    10년이 더 지나면 색다른 제품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네요. 패턴이 너무 예쁜데 양말로만 즐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원준 - 바이어들도 똑같이 말씀하세요. 이런 거 저런 거 만들어 보라고 아이디어 많이 던져주시죠.

    하지만 완벽을 기하는 양말을 만들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도 세컨드 팔레트 양말 하나 신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 추천해 주실 아이템이 있나요?
    지혜 - 룬아님이 세컨드 팔레트에 입문하신 시스루 도트 양말은 물론이고요, 이번에 ‘라메' 시리즈로 첫 글리터 양말을 출시했어요. 글리터 양말이야 시중에 많지만 그동안은 기대하는 퀄리티가 안 나와서 못 만들었거든요. 글리터 원사가 좀 비쌉니다 (웃음). 까끌까끌하지 않은 착용감을 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아가일 패턴이 예쁜데요. 글리터라면 화려한 느낌인데 아가일이 캐주얼하게 들어가면서 중화되어요. 아가일과 글리터 모두 흔한 소재임에도 세컨드 팔레트의 느낌으로 담겼네요.
    지혜 - 맞아요. 둘 다 보편적인 소재이지만 업그레이드된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아가일도 얼마나 많이 시도해 봤는지 몰라요. 이제야 저희다운 패턴이 나와서 출시하게 되었답니다. 룬아님 눈에 든 아가일 패턴으로 입문하시길 추천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