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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양말장수의 편지
    • Season 1. 맨땅의 헤딩 비기닝 (2011-2013)
    • EDIT BY 양말사장 | 2024. 1. 3| VIEW : 1506


    양말가게 창업일지 01. 헤딩 비기닝 (2011~2013)
    2011년, 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뉴스에서 참 많이 나오던 해였다. 나는 운좋게도 원하던 회사에 입사를 했다. 꿈에 그리던 회사에 들어갔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회사와 나는 맞지 않았다. 사실 회사가 문제였다기 보다는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회사원이 맞지 않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 수록 미래는 불투명하게 보였다. 함께 일하던 선배는 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나는 신입사원 1년차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선배의 산재신청은 승인되지 않았다.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일본 여행을 떠났고, 오사카에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양말가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마트에서 양말을 사신거나, 오픈마켓에서 묶음으로 된 제품만 사신었지 양말가게는 들어본 적도 가본 적도 없었다. 양말 한켤레에 3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난생 처음 알았다. 나는 양말에 매료되었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양말"과 "양말장사"에 동시에 매료된 것이다. 제품의 무게가 가볍고, 크기가 작고, 사이즈 갯수가 신발이나 옷에 비해 적고, 아웃풋이 동일해서 다양한 컨텐츠를 담을 수 있으며, 의류에 비해 유행에 덜 민감해서 이월 재고 발생이 없는 사업. 당시에는 장점만 보였기 때문에 딱히 단점을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가게가 있다면 아니 더 멋진 양말가게가 있다면 분명히 잘 될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스물여섯이었던 나는 지인 둘과 함께 "삭스타즈"라는 이름으로 양말 가게를 시작했다. 첫 자본금은 자취방 보증금 1500만원 이었다. 우리는 열정이 넘쳤지만, 너무 어렸고 경험과 지식은 한없이 모자랐다. 당시에는 유튜브도 없어서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사업계획서는 사업의 청사진이라기 보다는 몽상의 기록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나는 이 꿈을 현실로 만들수 있다는 이상하리만큼 단단한 믿음이 있었다.

    삭스타즈의 첫 번째 사무실은 가든 파이브의 창업지원 센터였다. 서울시에서 청년 창업가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면접을 통과하면) 사무실이었는데, 책상 몇개에도 꽉차는 5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를 포함해 총 3개의 회사가 일을 했다. 그곳에서 삭스타즈는 조금씩 조금씩 시작했다. 매일같이 지하의 푸드코트에서 밥을 사먹고,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하기 일쑤였다. 사실 말만 들으면 암울한 과거지만 이 당시를 회상하면 정말 즐거운 날들이었다. 나는 잠을 자지 않아도 꿈을 꿨다. 근사한 양말가게를 만드는 꿈.

    이후 우리는 도곡동에 첫 번째 사무실을 얻었다. 40평의 사무실에 양말들이 빼곡히 채워졌다.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진진했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가는 것이 너무 기대됐다. 이쯤 월요일을 한국에서 제일 싫어하는 양말 브랜드 사장님과도 친해졌지만, 나는 네모바지 스펀지밥 마냥 월요일에 가장 신나있었다.

    2013 디자인페스티벌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때의 장부와 회의록을 보면, 내가 얼마나 한심한 실수를 많이 했는지 지금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지만 (여전히 가지고 있다) 삭스타즈는 이 시기에 여러 행사에 참여했고, 나는 열정적으로 삭스타즈를 알렸다.

    디자인 페스티벌, 코리아 스타일위크, 각종 백화점의 행사들에 우리가 만든 양말을 싣고 전국을 떠돌았다. 이쯤에 여러 신진 브랜드 실장님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모두 힘들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시기가 아마 내 삶에서 가장 무작정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면 보통 승승장구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곧 우리는 창업자의 무덤이라는 "데드벨리"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