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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
    • EP19. 안녕은 새로운 시작
    • EDIT BY 구달 | 2024. 4. 8| VIEW : 703

    열쇠를 돌려 유리문을 연다. 카운터의 금속 일력에 손을 얹고 휠을 살살 굴려 날짜를 맞춘다. 재인 매니저가 노트북에 남긴 공식 업무 메모를 읽고, 선반 아래 쏙 숨겨둔 비공식 쪽지와 맛난 초콜릿을 찾아내어 주머니에 챙긴다. 청소를 한다. ‘봄 플리’를 검색해 음악을 튼다. 철제 의자 두 개를 꺼내 쇼윈도 앞에 내놓는다. 의자가 튼튼한지 확인할 겸(?) 잠시 앉아 초콜릿을 까먹으며 맞은편 카페의 모과나무에 돋아난 파릇한 새싹을 관찰한다. 어디에서 굴렀는지 등에 풀씨를 잔뜩 묻히고 나타난 고양이 까미와 인사를 나눈다. 청담 매장에서 맞이하는 여섯 번째 봄이다.

    이번 봄은 희한하리만치 내게 다정하다. 복슬복슬 귀여운 네발 친구들이 연거푸 방문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 주는가 하면, 손님들은 부러 시간을 들여 사온 커피며 주전부리를 연신 내 손에 쥐어주었다. 화이트데이에는 단골손님으로부터 무려 사탕과 쿠키로 꽉꽉 채운 2단 도시락을 선물 받았다. 내가 골라드린 양말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귀가 간지러운 칭찬을 한가득 속삭이고 가신 분도 있다. 게다가 2년 만에 처음으로 까미를 번쩍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참 신기하다. 마치 내가 곧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을 안다는 듯이 모두 나를 다정히 대해준다. 3월 내내 배웅 받는 기분으로 일했다.

    곧 청담점 근무를 마무리 짓고 서촌으로 근무지를 옮긴다. 첫 출근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눈 깜박할 새 5년이 흘렀다. 글 쓰는 사람을 양말 가게 점원으로 스카우트하는 편견 없는(?) 브랜드에서 도자기 빚는 동료, 시를 사랑하는 동료, 직물을 엮는 동료를 만나 팀을 이루는 값진 경험을 했던 5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사람들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주3일제를 실험하며 사회가 아닌 내가 원하는 밥벌이의 형태를 모색해본 의미 있는 시기였다. 양말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취향의 공유가 타자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몰랐다. 동네 모퉁이에 자리 잡은 소박한 양말 가게에서 이토록 다양한 경험을 쌓아올릴 줄은.

    5년 전 양말 가게 점원 일을 시작할 때 걱정이 딱 하나 있었다. 좋아하는 양말이 ‘업’이 되는 순간 양말이 꼴 보기 싫어지면 어쩌지? 다행히 지금 내 눈에 양말은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양말을 업으로 삼은 동료들의 애정과 헌신에 감복한 덕이고, 세상 진지하게 양말을 고르고 뿌듯해하는 손님들의 소박한 기쁨에 덩달아 감염된 덕이다. 반대로 그동안 점장 구달의 남다른 덕심에 감화되어 양말을 좋아하게 된 분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정든 가게를 떠나려니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서촌으로 무대를 옮겨 더 많은 사람들을 양말 덕질에 동참시킬… 아니 양말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들 생각에 설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청담 매장에서 근무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공유하고자 한다. “점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양말은 뭐예요?” 5년 동안 온갖 브랜드의 양말이 진열대를 거쳐 갔지만 나의 최애는 단 하루도 바뀐 적이 없다. 웜그레이테일의 호랭이 양말. 내가 이 양말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면, 별명을 지어 부르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버릇 탓에 손님들에게 추천할 때조차 호랑이를 호랭이라 바꿔 말할 정도다. 서촌 매장에서는 나의 최애가 모두의 최애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노라는 짧은 출사표를 던진다.



    *〈점장 구달의 장바구니〉는 이번 19회를 마지막으로 종료합니다. 다음 달부터는 새 칼럼 〈점장 구달의 서촌 통신〉으로 찾아뵐 예정이니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