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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정현의 스몰 카페
    • 순수하고 열렬한 마음: 담대하게 커피워크
    • EDIT BY 김정현 | 2024. 5. 7| VIEW : 380

    나는 ‘맛알못’이다. 뭘 먹어도 다음과 같은 반응이 튀어나온다. 오, 괜찮은데?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면 영혼 없는 리액션이라 폄하할 테다. 억울하다. 내 혀는 정말 괜찮다고 느꼈으니까. 맛있어서 맛있다고 하였는데 그게 왜 맛있는 거냐 따져 물으신다면… 둔한 미각과 함께 사는 일상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는 나도 모른다. 인생에는 조금 바보 같은 구석도 있어야 맘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미식가와는 거리가 먼 타입의 나조차 까탈스러워지는 영역은 커피다. ‘아무 커피나 마시자’라는 말을 나는 하지 않는다. 맛있는 커피와 맛없는 커피를 판단하는 자체 기준을 보유한 건 기본이요, ‘내 커피 취향은 이렇소’ 하고 그 특징과 요소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품질 높은 원재료의 중요성과 세부적인 공정 과정에 대한 이해 역시 기초적인 수준 정도는 갖췄다. 커피야말로 내가 미식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유일한 식품이지 않을까? 맛알못을 커피의 신세계로 끌어들인 고마운 존재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브루잉 커피*와 싱글 오리진* 원두의 매력을 알려준 일등공신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담대하게 커피워크다.

    ‣ 브루잉 커피 : 분쇄한 원두를 담은 필터에 직접 물을 부어 추출하는 커피로 흔히 핸드드립 커피라고 칭한다. 머신을 사용해 고압으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와 구별된다.
    ‣ 싱글 오리진 : 단일 국가의 특정 농장에서 재배된 단일 품종 커피. 두 가지 이상의 싱글 오리진을 섞는 ‘블렌드’와 구별된다.


    집에서 15분 정도 걷다 보면 불광천 옆으로 골목이 하나 나온다. 지은 지 족히 20년은 넘어 보이는 붉은 벽돌 빌라들, 그 사이에 정갈한 격자무늬의 무채색 건물이 서있다. 담대하게 커피워크는 이 건물 1층에 자리한 작은 로스터리 카페다. 사전 정보 없이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라면 당황할 확률이 높다. 메뉴와 공간 모두 일반적인 카페와 다르기 때문이다. 담대하게 커피워크에서 주문할 수 있는 건 오직 커피, 그중에서도 브루잉 커피뿐이다. 논-커피와 디저트는 당연하고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하는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도 먹을 수 없다. 대신 박진 대표가 수동 로스터기로 볶은 여러 종류의 싱글 오리진 원두가 준비돼 있다. ‘다양한 산지의 라이트 로스팅 커피를 소개한다’라는 지향점 아래, 커피 열매가 품은 고유한 특성에 초점을 맞춘 밝고 화사한 커피들이다.

    자리에 앉으면 가져다주는 메뉴판이 재밌다. 커피 내릴 때 사용하는 종이 필터에 원두 이름과 테이스팅 노트를 적었다. 기본 정보 외에도 로스터이자 바리스타로서 느낀 주관적인 감상을 기록했는데, 따뜻할 때와 식었을 때의 맛을 구분함으로써 이곳의 커피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섬세한지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좌석이라고는 길게 뻗은 일체형 나무 의자와 마당의 벤치가 전부다. 테이블도 따로 없다. 노트북을 들고 와서 작업을 하거나 여럿이 방문해 왁자지껄 수다를 떨기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란 뜻. 바꿔 말하면 잔잔한 연주 음악을 배경 삼아 오롯이 커피 한잔에 집중하고 싶은 1인 손님에게 최적화된 곳이다. 장식적 요소 없이 단순한 형태를 이루는 가구와 기물들, 매장 구석구석을 채우는 만화책과 장난감 역시 함부로 커피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다. 이 공간의 주인공은 커피뿐이다.

    실례가 아니라면 담대하게라는 수식어 뒤에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순수하게’. 언젠가 박진 대표가 쓴 문장이 떠오른다. *“심란할 때나 행복할 때나 커피를 들여다본다.”*
    먼 이국에서 건너온 커피 열매를 본래의 향과 맛을 온전히 살리도록 천천히 볶는다. 정성으로 볶은 커피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수천 번도 더 만진 그라인더의 세팅을 조절한다. 최적의 온도로 맞춘 물을 붓고, 잠시 향을 맡은 뒤, 다시 물을 부어가며 차분하게 추출을 마친다. 일종의 숭고한 의식처럼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있으면 그가 커피라는 존재를 얼마나 아끼고 또 조심스러워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고민과 불안 틈에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경애의 마음이구나.


    옆에서 지켜본 그는 영락없는 ‘덕후’인데, 커피를 향한 마음은 만화와 축구와 레고를 대하는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처럼 느껴진다. 커피 앞에서는 호감을 넘어 고집과 신념을 세운다. 잡내 없이 깨끗한 커피. 풍부하고 입체적인 커피. 부드럽게 여운을 남기는 커피. 사람들의 하루에 산뜻하게 스며드는 커피. 그 커피를 볶고 내리는 가운데 책임감을 잃지 않는다. 매출이 떨어져도, 부정적인 반응을 목격해도, 때로는 자기 확신조차 흔들리더라도 열렬한 만큼 한결같은 결과를 내는 데 정진하는 것. 묵묵하고 담대하게.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신념과 책임감이야말로 새벽마다 피로와 걱정을 뒤로 한 채 몸을 일으켜 세우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되뇌인다.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면 더 많이 사랑하자. 관심 있고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들을 더 순수하게 사랑해 보자. 심란할 때나 행복할 때나 별생각 없이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성실을 밀어붙일 신념과 책임감이 자리 잡을 때까지. 담대하게 커피워크가 내게 알려준 건 커피라는 황홀한 미식의 세계만이 아니다.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걸 밀어 붙여봐도 되겠다는 믿음, 이 열렬함이 근면과 성실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까지 포함한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주인장의 정직과 뚝심을 다들 어디서 알아보고 오는 것인지 이 작은 카페는 느리지만 탄탄하게 단골층을 쌓아가는 중이다. 슬리퍼를 끌고 슬렁슬렁 걸어오는 동네 주민들은 처음에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들어 왔다가 이제는 주기적으로 바뀌는 원두와의 새로운 만남을 반가워한다. 끝내주는 브루잉 커피를 마시기 위해 멀리서 작정하고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 틈에 자연스럽게 끼어든 나는 벤치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훅 들이킨다. 먼저 들어오는 달콤한 과일 향 한 번, 다음으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초콜릿 뉘앙스 한 번. 단정한 연주곡을 닮은 한 잔을 음미하는 시간이 즐겁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놓칠 수 없다.

    덧. 이날 내가 마신 건 ‘과테말라 엘 인헤르토 게이샤 풀리 워시드’. 자스민과 라벤더로 시작해 백도와 천혜향까지 스쳐 지나가는 화려하고도 섬세한 커피였다. 크게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채 열심히 혀로 굴리면 과일의 단맛이 그윽히 남는 게 신기했다. 맛에도 겹겹의 층이 존재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나는 커피에 빠지기 전까지 실감하지 못 했다.



    담대하게 커피워크
    서울 은평구 응암로21길 17 1층 커피숍
    @damdaehagecoffee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