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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 점장 구달의 서촌통신
    • 서촌은 까마귀 전성시대
    • EDIT BY 구달 | 2024. 5. 10| VIEW : 214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촌이라 불리는 서울의 오래된 동네. 이 계절이면 싱그러운 연둣빛 잎사귀를 틔운 은행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풍경이 특히나 아름다운 서촌의 어느 모퉁이에 까마귀가 출몰했다는 소식이다. 통의동 백송 터 뒤편, 고운 연회색 벽돌로 지은 2층 건물 출입구에서 녀석을 만날 수 있다. 가느다란 다리를 쭉 뻗고 앉은 자세며 발끝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듯한 표정이 여느 평범한 도시 까마귀와는 사뭇 다른 인상을 풍긴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건물 앞을 천천히 지나가던 어르신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되돌아와 까마귀를 본다. 그리고 묻는다. “여긴 뭐 하는 데요?”

    서촌은 한사코 존재감을 감추려는 듯 골목으로 쏙 숨어든 작은 가게들이 은밀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고즈넉한 동네다. 한복 차림의 관광객, 인왕산을 오르려는 등산객, 청와대를 구경 온 행락객이 뒤섞여 시끌벅적한 주말에도 구불구불 꺾인 골목 안쪽은 서촌 특유의 차분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서촌을 좋아한다 고백하는 이들도 대체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고요하고 차분하며 개성을 은은하게 표현하는 사람들. 그들이 양말 가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양말을 즐긴다는 건 다소 별스러운 취미니까.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오픈 첫날 매장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가신 서촌 토박이 어르신이 남긴 말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포착했다. “재밌구먼. 다음에 지갑 들고 와야겠네. 한 켤레 팔아줘야지!” 양말이 재미있다는 말. 동시에 나는 보았다. 어르신의 완고한 눈빛에 즐거움이 어리는 순간을.




    서촌 매장이 문을 열고 어느덧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쉬는 시간에 커피를 사려고 잠깐 거리로 나서면, 우리 가게의 페르소나인 까뮤 로고가 찍힌 쇼핑백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곤룡포 자락을 휘날리며 돌담길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임금의 뒷짐 진 손에도, 요즘 난리라는 유명 카페의 길게 늘어선 웨이팅 줄에도 까뮤가 앉아 있다. 서촌에 자연스럽게 침투한 별난 까마귀를 보면 기분이 좋다. 쇼핑백 안에는 어떤 양말이 담겨 있을까. 손님들이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했기를, 그러니까 조금은 별스럽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양말을 과감히 골랐기를 바라게 된다. 매장에서 일종의 ‘까뮤’스러운 순간을 포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출근할 때 신을 무난한 양말을 찾던 중년 손님은 매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이렇게 외쳤다. “나 평범한 양말 안 사, 재미난 양말 살래!” 앳된 얼굴의 비구니 스님은 발뒤꿈치 양쪽에 각각 고양이 얼굴과 멜론을 수놓은 양말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말했다. “절할 때 살짝 보이면 참 귀엽겠지요?” 서촌에 귀여운 까마귀 동지들이 모여들고 있다.